ASML “올해 EUV 30% 증가”
슈퍼사이클에 역대 최대 규모
경쟁사들과 힘겨운 싸움 예고
‘시스템반도체 1위’ 차질 우려
올해 반도체 시장이 슈퍼사이클(장기호황)에 진입한 가운데, 핵심장치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둘러싼 삼성과 TSMC의 ‘물량 확보 전쟁’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구속 수감되면서 대대적 투자에 나선 다른 경쟁자들과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20일(현지시간) ASML의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올해 EUV 장비 관련 매출 목표는 전년 대비 약 30% 증가한 45억 유로(약 6조원)로 잡았다”면서 “(삼성과 TSMC 등) 글로벌 생산 업체들이 올해 예상되는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ASML의 올해 EUV 장비 생산대수가 40대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역대 최대 생산량으로, 슈퍼사이클에 따른 수요 증가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생산을 늘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ASML은 지난해 이 제품을 31대 생산했다.
1대당 가격이 1500억원에서 2000억원에 달하는 EUV 장비는 5nm (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이하 반도체 초미세공정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장치로 꼽힌다. 대당 제조기간만 5개월 이상이 소요되는데 전세계에서 이 장비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사실상 ASML이 유일하다.
반도체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ASML은 지난해 140억 유로(약 18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에서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는 TSMC와 삼성전자는 ‘초격차 경쟁’을 위한 필수 조건인 EUV 장비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작년말 기준 TSMC는 60여대, 삼성전자는 10여대 정도의 EUV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오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면서 “연구개발(R&D)에 73조원, 생산시설 확충에 6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삼성전자는 올해 평택2공장(P2)에 파운드리 생산 설비 장비를 반입하는 등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재용 부회장도 새해 첫 행보로 P2 방문을 선택하고, EUV 전용 라인을 직접 점검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2025년까지 EUV 장비 100대를 도입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초격차 전략’을 진두지휘하던 이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EUV 장비 물량 확보 등에서 주요 경쟁자들에게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재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차세대 EUV 장비 우선 도입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ASML 입장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차세대 장비 개발을 위해 제조사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삼성이 고전하는 사이 ASML은 TSMC의 지원을 받아 대만에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밀월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TSMC도 2025년까지 EUV 장비 200대 도입을 목표로 하며 사실상 초격차 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실적 발표에서는 올해 약 280억 달러(약 31조원)에 달하는 시설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장비 투자에만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며 신규 업체의 진입이 원천 봉쇄되는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5나노 이하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회사는 삼성과 TSMC로 압축 중인데,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없는 회사들은 경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양대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