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빵이라면”…정부 여당의 부동산 설화 잇따라

“문 정권은 귀태”…여당 공격하다 ‘무리수’

민심에 둔하고 의석수에 오만했던 與의 말실수

대안 없는 비판에만 매몰된 野의 입

그래픽 디자인 : 김효민
그래픽 디자인 : 김효민

최근 잇따른 정치권의 설화(舌禍)가 국민들의 스트레스 수치를 높이고 있다. 정책 실패나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고 방어만 하려는 말들은 여당 국회의원·장관을 막론하고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우리편’이면 일단 감싸고 보자는 식의 발언도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말로 인한 논란은 특히 정부와 여당에 집중됐다.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기고만장한 탓에 고삐가 풀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 대표, 국민의 공복이라면 말의 무게를 깊이 새겨 더 성숙하고 겸손하고 진중하게 말해야 한다”는 ‘상식’이 무색했다.

▶국민의 대표들, 부동산 관련 입 열 때마다 ‘국민 분노’ 일으켜 = 올해 설화를 가장 많이 부른 건 역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발언들이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정부의 7·10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후 MBC 100분 토론 방송에서 “(집값이) 안 떨어질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토론 내내 ‘정부 대책이 먹혀들 것’이란 취지로 말하던 여당 의원이 사회자의 클로징 멘트 후 마이크가 꺼진 줄 안 채 전혀 다른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앞에서는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하면서 속으로는 그럴 생각이 없는 정부여당의 본심을 들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진 의원은 이에 “정부 대책이 소용없다는 취지가 아니라 정책 발목을 잡는 ‘집값 하락론자’들의 인식에 대한 반박”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집값을 잡겠다고 나온 수차례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안 떨어질 것”이라는 여당 의원의 말 한 마디가 시장에 정반대의 시그널을 준 셈이기 때문이다.

임대차 3법 통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이 급속도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던 8월엔 윤준병 의원이 설화를 빚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건 나쁜 현상이 아니다.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온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이다. 인터넷 카페 등에선 “월세에 한 번 살아본 적이나 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며 전세제도가 점차 사라져가는 게 숙명이라고는 해도, ‘내집 마련의 사다리’로 여겨져온 전세를 월세보다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서민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국회 국토위원장이자 민주당 내 미래주거추진단장인 진선미 의원은 지난 11월 “아파트 환상을 버려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정확히는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으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말이었다. 야당은 “국민과 가장들의 기본적 소망마저 ‘환상’으로 치부했다”며 맹비난했고, 진 의원이 서울 강동구에서 가장 비싼 신축아파트(래미안 솔베뉴)에 거주한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여론은 더 악화했다.

▶‘마리 빵투아네트’ 국토부장관, ‘전세 난민’ 경제부총리 = 부동산 주무장관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설화는 심지어 수차례 반복됐다. 시장의 ‘패닉 바잉’을 공감하지 못하는 발언(“30대 ‘영끌’ 안타깝다”)부터 정확한 시세·제도를 모르는 발언(“일산 저희 집 정도는 디딤돌 대출로 살 수 있다”)까지 다양했다. 지난달 말엔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발언으로 ‘마리 빵투아네트’, ‘제빵부 장관’이라는 조롱섞인 별명까지 얻었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전 정부 탓만 하는 촌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김 장관을 “2020년 설화의 제왕”이라고 표현했다.

‘경제 사령탑’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설화를 피하지 못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 10월 “(임대차3법 시행으로) 기존 임차인의 주거안정 효과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맹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본인조차 살 집을 구하지 못해 ‘전세 난민’이 된 사실이 알려지며 조롱을 받았다. 홍 부총리는 결국 전세난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최근엔 문재인 대통령도 13평형(44㎡) 공공임대 주택을 둘러보다 “4인 가족(어린아이 2명)도 거주가 가능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발언은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에게 묻는 질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발언의 진의가 문제가 아니라 민심을 잘못 짚은 청와대의 이벤트성 행보가 문제였다.

▶‘총선 압승 때문?’ 거대 여당의 ‘오만함’ 비치는 설화 = 여권발(發) 설화는 제 21대 총선 압승 후 눈에 띄게 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야당 의원들을 무시하고, 사적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말로 수차례 문제가 됐다. 추 장관은 지난 7월 아들의 군 특혜 휴가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의원을 두고 “소설을 쓰시네”라고 혼잣말해 논란을 빚더니, 9월엔 “저 사람은 검사 안하고 국회의원 하길 잘했다. 죄없는 사람 여럿 잡아다 가둘 것 같다”고 말해 야당의 맹비난을 받았다.

윤호중 의원(법사위원장)은 기자 출신인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지라시 만들 때 버릇이 나온다”고 지적하고,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의 보좌진을 두고 “입법보좌관 자격시험을 도입해야한다”고 핀잔을 줘 국민의힘 보좌진들의 집단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윤영찬 의원은 포털 뉴스 편집에 불만을 드러내며 자신의 보좌진에게 “카카오 (국회로) 들어오라고 하세요”라고 휴대폰 메신저앱을 통해 지시하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돼 큰 비판을 받았다.

이른바 ‘우리편’을 두둔하고 방어하려다 역풍을 맞은 발언도 자주 목격됐다. 우상호 의원은 추미애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 논란 당시 “카투사는 그 자체가 편한 보직” 이라고 말했다가 하루만에 사과했고, 초선의 김남국 의원은 “이번 공격은 국민의힘에 군대를 안 다녀온 분들이 많아 그런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가 ‘자책골’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실제로는 오히려 민주당 의원 미필자 비율이 국민의힘의 미필자 비율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성추행 의혹으로 치르게 된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에 대해 “국민들의 성 인지 감수성 집단학습 기회”라고 답변해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야당도 예외없던 ‘설화’...전문가들 “말의 무게 새기고 더 진중해야” = 설화는 야당도 비껴가지 않았다. 여당 공격에 골몰한 나머지 ‘무리수’를 둔 경우였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집주인한테 전화가 오는 날이면 밥이 안 넘어가더라”며 전세살이의 고달픔을 표했다가 거주중인 아파트가 전세금만 26억원대의 서울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역풍을 맞았다. 검사 출신 김웅 의원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도중 “성범죄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생기는 충동 탓”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빚고 사과했다. 정찬민 의원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농성을 벌이던 고(故) 김용균씨 어머니 등을 향해 “때밀이들”이라고 표현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정 의원은 “유가족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말은 이미 입 밖으로 뱉어진 후였다. 초선인 배현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을 ‘귀태(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로 규정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잇따른 설화에 대해 “정치적 훈련이 부족한 사람들의 생각없는 발언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욕설이나 성(姓)적인 발언 등 과거에 자주 보이던 전통적 ‘막말’은 오히려 줄어들었지만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들은 계속되고 있다”며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하면서 활자든 영상이든 ‘실언’이 나오면 즉각 확대재생산돼 대중들의 소비 폭이 넓어진 것도 설화가 잦아졌다고 느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설화를 빚는 정치인들은 균형감각을 잃은 경우가 많다”며 “정부 정책을 무조건 옹호하려다 보니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내용을 끼워맞추게 되고 자신의 언어가 안 나와 설득력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치인의 자질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이 완장을 차다 보니까 정치인들의 언어가 오히려 퇴보하고 설화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두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