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김동률이 만으로 40세가 됐다. 그가 작곡한 ‘기억의 습작’ ‘취중진담’ ‘그땐 그랬지’ ‘1994년 어느 늦은밤’ ‘천일동안’ ‘Show’ ‘거위의 꿈’ ‘사랑한다는 말’ ‘아이처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등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 상당수가 20대에 만들어졌다.
김동률은 2011년 말 크리스마스 앨범 ‘율’을 내놓고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순수음악은 원숙해지면 계속 발전이 가능하지만, 대중음악은 나이에 반비례하는 것 같다. 적어도 정비례는 아닌 것 같다”면서 “20대는 가장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시기로 자신에 대해 고민을 가장 많이 할 나이다. 어렸기 때문에 그런 감성의 곡들을 작곡하는 게 가능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져도 괜찮다. 더욱 원숙한 감성으로 곡을 만들어도 좋다. 김동률이 최근 내놓은 정규 6집 ‘동행’에 실려 있는 10곡은 모두 완성도가 높다. 듣는 사람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각각 다른 경우가 많다. 나는 ‘오래전 이별해놓고 오늘 지금 이별이 나에게 왔다’고 하는 ‘오늘’이 좋고, 내 아내는 타이틀곡 ‘그게 나야’가 좋다고 했으며, 나의 아들은 마지막 트랙곡 ‘동행’을 좋아한다. 요즘같은 가을에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야외벤치나 카페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동행’에 실린 노래들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감정을 한번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친구 서동욱과 ‘전람회’를 결성한 지 20년이 됐지만, 새 앨범 속에는 지금 김동률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오롯이 실려 있다. 수록곡 ‘내 마음은’처럼 ‘뜨겁지 않은 사람이 됐어’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고백’에서는 사랑을 고백하던 그 순간을 수줍은 목소리로 재현하고, ‘내 사람’에서는 날 설레게 했던 사랑이 지금도 행복을 주고 있다고 노래한다.
김동률의 새 앨범 수록곡 가사는 모두 시(詩)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사랑에 대한 기억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오선지에 올려 공감과 감성을 증폭시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김동률이라고 해서 쉽게 이런 음악이 나오는 건 아니다.
김동률은 이번 음반을 3년 준비했다고 보면 된다. 음악을 뚝딱 만드는 사람도 있고, 고통속에서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지만 김동률은 천천히 준비하는 사람이다. 빨리 돌아가는 이 세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은 없어진 KBS ‘낭독의 발견’처럼 사는 사람이다. 느리고 답답하게 사는 게 아니라, 제대로 완성도가 높아질 때까지 준비하는 사람이다.
김동률은 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유럽 미술관들을 돌아보고, 코펜하겐 등의 한적한 경치, 유적지, 맛집을 찾아다니며 문화적인 느낌을 공식 사이트 ‘김동률’의 모놀로그에 적어놓았다. 음반에 함께 참여한 황성제, 이상순 등 세션의 면면에 대한 리뷰도 함께 올려놔 이를 읽는 것만으로도 잘만들어진 수필을 보는 것 같다. 모놀로그의 글들만 봐도 김동률이 새 앨범을 얼마나 세심하게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음악이 빨리 소비되고 마는 요즘, 10곡 남짓 담긴 정규 음반을 내는 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디지털 싱글이니 리패키지 앨범 등으로 자주 음악을 내놓고, 재활용도 하고, 예능에도 자주 얼굴을 내미는 전략을 써야 한다. 하지만 김동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앨범 발표와 투어콘서트만이 존재한다. 수록곡의 음원을 공개해도 소장가치가 높아 서로 앨범을 사려고 하고, 콘서트 티켓을 오픈만 하면 금세 매진이 돼버린다.
물론 김동률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요인을 두루 갖췄다. ‘악기나 다를 바 없는 김동률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싶다’는 말들을 할 정도로 매력적인 남저음, 이지적으로 생긴 외모(여성들은 잘생겨도 왠지 머리에 든 게 없어 보이는 남자는 싫어한다), 감성발라드를 만들어내는 싱어송라이터, 좋은 대학교를 다닌 엄친아 등등. 하지만 ‘동행’ 수록곡 중 무려 7곡 정도가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라 있게 하려면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김동률의 인기 이유는 목소리, 음악, 분위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빠른 흐름에 신경 쓰지 않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느린 템포로 파들어가는 장인정신이 그를 지지해주는 팬을 확보한 요인이다. 그 고민의 흔적과 깊이가 청자에게 감동을 준다.
김동률은 모놀로그에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멜로디와 가사가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최신 유행을 따르지 않아도, 어려운 음악의 문법에 기대지 않아도 듣기 편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면서 “그저 한두 번씩 듣고 잊히는 노래가 아닌, 오랫동안 맘에 남아 자주 꺼내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썼다. 이런 음악이 쉽게 나올 리 없다. 김동률이 왜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음악을 천천히 만드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벗어날 때 결과적으로 인기와 비즈니스도 따라오는 게 김동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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