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물가 0.5%↑, 1999년 이후 최저

OECD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수준

내년도 연간 0.6~1.0% 상승에 그칠 전망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수요 측면에서 기조적인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마이너스 물가' 우려는 덜었지만 경제활력은 여전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와 유사한 수준에 머물게 된다. 저성장을 동반한 디플레이션 공포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2일 통계청에 따르면 식료품·에너지 제외지수(근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5% 상승했다. 지난 1999년 11월 0.1%의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였다.

연간으로도 2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1월~11월 근원물가의 전년 누계비 상승률은 0.7%에 불과했다. 남은 12월을 반영하더라도 0%대를 벗어나긴 어렵다. 연간 -0.2%의 근원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던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셈이다. IMF 외환위기 수준까지 물가가 떨어진 것은 그만큼 경기가 얼어붙었다는 의미다.

근원물가는 소비자물가에서 국제유가, 농산물 값 등 예측이 어려운 공급 측 요인을 뺀 수치로 수요 측면에서 기조적인 물가 추세를 살펴볼 수 있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주로 집세, 학교 급식비, 해외단체여행비 등이 근원물가를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이 2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브리핑실에서 11월 소비자물가동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통계청은 이날 브리핑에서 올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7(2015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0.2% 상승했다고 밝혔다. [연합]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이 2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브리핑실에서 11월 소비자물가동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통계청은 이날 브리핑에서 올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7(2015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0.2% 상승했다고 밝혔다. [연합]

저물가 기조가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는 그 수준이 지나치게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3분기 기준 한국보다 근원물가가 낮은 국가는 36개 회원국 중 5개 국가뿐이다. 포르투갈(0.1%), 일본(0.4%), 스위스(0.4%), 덴마크(0.5%), 이탈리아(0.6%) 등이다. 이스라엘과 프랑스는 한국과 동일한 0.7%를 기록했다.

정부는 기저효과 등 특이요인이 사라지는 내달부터 물가상승률이 0% 중반대로 회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분간 마이너스 물가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성장을 동반한 저물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0.6%로 보고 있다. 한은의 통화정책상 물가 목표치인 2.0%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는 수준이다.

일본식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과 경기침체) 공포는 계속해서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밖에 없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낮은 수준에서 고착화될 경우 '수요부진-저물가'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통해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가하락을 예상하면 가계는 소비를 미래로 이연시키고, 기업은 투자, 생산을 축소한다.

이미 이러한 조짐이 보인다. 앞으로 1년 동안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 같은지를 나타내는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11월 1.7%로 한 달 전과 같았다. 지난 2002년 2월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물가가 상승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성장보다 비용을 줄이는 데 재정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에 수요 부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까지 2년 연속 0%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면 일시적인 저물가 현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며 "생산자물가까지 포함한 GDP디플레이터는 여전히 마이너스일 것"이라고 말했다.

KDB미래전략연구소도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저물가가 장기간 지속하면 생산 활동이 약화할 수 있다"며 "실제 소비 진작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