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배우 김혜자와 김해숙이 ‘국민 엄마’란 편견을 깼다.먼저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김혜자는 25세 젊은이로 변신했다. ‘눈이 부시게’는 취업준비생 혜자(한지민)가 아빠(안내상)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의 시계를 사용했다가 할머니가 돼며 벌어지는 이야기. 이에 따라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는 노년의 외모를 가졌으나 마음만은 스물 다섯 그대로인 혜자를 연기,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같은 시각 김해숙은 TV조선 토일드라마 ‘바벨’ 속 악인 신현숙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바벨’은 복수를 위해 인생을 내던진 검사(박시후), 재벌과의 결혼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배우(장희진)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극 중 신현숙은 욕망으로 일그러진 재벌가 안주인으로 묘사된다. 아들(송재호)에 대한 삐뚤어진 사랑 때문에 욕망의 화신이 돼버린 인물로, 속내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바벨’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이 대목에서 두 배우의 활약이 국내 대중문화계에서 갖는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 속 주요 캐릭터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추세이지만, 중견 배우들에게는 여전히 제한된 역할만 주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김혜자와 김해숙 역시 모성과 희생을 강요받는 ‘엄마’ 캐릭터를 숱하게 연기한 끝에 ‘국민 엄마’란 별칭을 얻게 됐다. ‘눈이 부시게’와 ‘바벨’에서 보여준 김혜자와 김해숙의 변신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 까닭이다.사실 김혜자와 김해숙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엄마’보다 더 다양한 여자 캐릭터로 분해 작품마다 다양한 얼굴을 보여줘왔다. 이에 미디어 속 여자 연기자의 입지를 넓히는 데 일조한 김혜자·김해숙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 본다.
■ 엄마 아닌 ‘여자’의 삶… 영화 ‘길’ 김혜자 VS 영화 ‘허스토리’ 김해숙정인복 감독의 영화 ‘길’(2017)은 외로운 노년의 세 사람이 주인공인 3개 에피소드를 엮은 작품이다. 그 중 김혜자가 연기한 순애는 자식들을 해외로 이민 보내고 서울의 넓은 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노인이다. 가전제품을 일부러 망가뜨린 다음 A/S센터에 수리를 요청하고 수리 기사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인물.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 이면에 쓸쓸히 남겨진 여자의 삶을 그려내 호평받았다.그런가 하면 김해숙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여자들의 삶을 연기한 적이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6년간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법정 공방을 벌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김해숙은 그 선두에 선 배정길 할머니를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특히 그가 법정에서 일본인들을 향해 “나를 내 본래 모습으로 돌려 달라. 당장 17살 때 내 모습으로 돌려 달라”고 울부짖는 대목은 ‘허스토리’의 명장면으로 꼽히며 많은 관객을 울렸다.
■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김혜자 VS 영화 ‘도둑들’ 김해숙김혜자를 비롯해 고두심·나문희·윤여정·박원숙·김영옥·신구·주현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관심받은 tvN ‘디어 마이 프렌즈’(2016)는 황혼의 청춘 찬가를 그렸다. 그 중에서 김혜자는 남편의 죽음 이후 치매를 앓기 시작한 조희자를 맡았다. 당시 김혜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 변해가는 모습에 힘들어 하는 조희자를 실감나게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런 동시에 첫사랑 이성재(주현)와 ‘썸’을 타는 모습도 귀엽게 그려내며 미소까지 자아냈다.‘디어 마이 프렌즈’의 김혜자가 미묘한 ‘썸’의 기류를 나타냈다면 영화 ‘도둑들’(감독 최동훈, 2012)에서 김해숙은 보다 짙은 멜로를 선보였다.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보석을 훔치기 위해 의기투합한 도둑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김해숙은 업계(?)에서 이름 좀 날린 ‘씹던껌’을 연기했다. 극 중 씹던껌은 중국 현지 도둑 첸(임달화)과 부부로 위장했다가 진짜 사랑에 빠진다. 이에 김해숙은 임달화와 진한 키스신을 선보이기도 했다.
■ 장르물 만난 베테랑들… 영화 ‘마더’ 김혜자 VS 영화 ‘박쥐’ 김해숙2009년 개봉한 영화 ‘마더’(감독 봉준호)는 베테랑 김혜자의 연기력을 새삼 느끼게 한 작품이다. ‘마더’는 살인범으로 몰린 아들(원빈)의 누명을 벗기려는 노모의 고군분투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이전까지 단아하고 선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김혜자는 ‘마더’에서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소름끼치는 반전을 선사했다. 또한 이를 통해 국내외 각종 영화 시상식을 휩쓸기도 했다.같은 해 김해숙은 흡혈귀를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 ‘박쥐’(감독 박찬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박쥐’에서 김해숙이 연기한 라 여사는 아들(신하균)에게 집착하며 며느리(김옥빈)를 학대한 인물이다. 김해숙은 라 여사의 히스테리컬한 모습부터 몸이 묶인 채로 눈동자만 굴려 감정을 표현하는 고난도 장면까지 소화하며 관객들을 감탄케 했다. 이에 김해숙은 ‘박쥐’로 국내 주요 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 레전드들의 리즈 시절… 영화 ‘만추’ 김혜자 VS 드라마 ‘인현왕후’ 김해숙2011년 중국을 대표하는 스타 탕웨이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은 영화 ‘만추’(감독 김태용).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김혜자가 있다. ‘만추’는 1966년 이만희 감독이 만든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이는 1981년에도 한 차례 재해석된 바 있다. 김수용 감독 버전의 ‘만추’다. 이때 주인공이 김혜자였다. 이 작품으로 처음 스크린에 나선 김혜자는 감성 짙은 멜로를 특유의 분위기로 소화하며 당시 마닐라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는 성과를 냈다.그런가 하면 김해숙의 전성기 시절 출연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MBC 정통 사극 ‘조선왕조 500년’의 여덟 번째 작품 ‘인현왕후’다. 우리나라 사극이 꾸준히 재해석하고 있는 조선 숙종 시절,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대립을 그린 드라마다. 1988년 방송됐으며, 여기서 김해숙은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를 맡았다. 당시 나이 30대였던 김해숙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외모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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