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게 맞는가 싶다. ‘상류사회’의 시계는 과거에 멈춰 있다. 한마디로 시대착오적 작품이다. 영화 ‘상류사회’는 최상류층을 향해가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뤘다. 학생들에게 인기와 존경을 동시에 받는 경제학 교수 태준(박해일)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촉망받는 정치 신인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그의 아내인 수연(수애)은 미술관의 부관장으로 관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최상위층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그에 따른 대가는 너무 크다. ‘상류사회’는 2등이 1등이 되고 싶어 하는 본능적 욕망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오르고 싶어 하는 최상위층의 추악한 민낯을 까발린다. 큐레이터라는 수연의 직업과 미술관이라는 배경 등을 통해서 ‘상류사회’는 그 욕망을 비주얼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노력을 쏟아부었다. 여기에 조소가 절로 터지는 곳곳에 블랙 코미디 요소도 숨겨있다.
하지만 ‘상류사회’ 속 인물들은 그간 많은 영화에 등장했던 상류층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독한 속물이며 윤리의식은 찾아보기 힘든 재벌과 재벌가와 손을 잡아 자기 이익을 챙기는 정치인의 모습은 너무 전형적이다. 어떻게 보면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재벌 총수는 취미이자 재미를 위해서 복면을 쓰고 을에게 폭행을 휘두르고 자신의 아들을 낙하산으로 미술관 관장 자리에 앉힌다. 서민을 이용해 정계 인사들은 정치쇼를 벌이고 정계에 진출한 태준은 자신의 어린 비서관과 불륜을 저지른다. 우리가 뉴스에서 봐오던 그 이야기 그대로다. 특정 인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는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러 있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은 고루하다. 미투(Me too) 정국이 세상을 뒤집은 현실이다. 하지만 ‘상류사회’에서 젊고 예쁜 보좌관은 유부남인 정치인를 선망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갑을 관계에서의 성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때에 보좌관이 상관을 유혹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 ‘상류사회’의 여자 캐릭터 대부분이 그렇다. 자신의 성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그런 여성들끼리 시기하고 대립한다. 수연은 미술관 관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후배인 재벌가 딸 현아(한주영)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며 “미련하게 가슴만 키우지 말고”라며 여성의 신체를 조롱하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자신의 상사인 미술관 관장 화란(라미란)이 도움을 줄 것 같지 않자 그의 남편인 용석(윤제문)을 이용한다. 수연이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찾아가는 것도 태준이 아닌 여자 보좌관이다.
남녀의 관계가 깨질 때 오롯이 피해자는 여성인 수연이다. 극중 수연과 태준은 모두 불륜을 저지른다. 하지만 태준의 불륜은 한순간 휘몰아 친 바람 같이 가볍게 터치한 반면 수연은 하룻밤 불장난에도 온갖 협박과 치욕을 당해야 한다. 수연을 힘들게 한 건 그의 섹스 동영상을 가지고 협박하는 이들이지만 1차 가해자인 지호(이진욱)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불법 촬영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여성들이 일상에서도 불안에 떨고 있는 이 때에 섹스 동영상으로 온갖 협박을 받고 파멸한 수연이 최후에 자신의 치부를 직접 고백한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뜬구름 같은 이야기다. 이런 설정들을 표현하는 방식은 더 참기 힘들다. ‘상류사회’엔 주요 배역들의 베드신이 세 차례나 나온다. 그릇된 성관념과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 보더라도 너무 노골적이다. 특히 윤제문이 연기한 용석의 베드신은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실제 일본 AV 배우를 섭외한 본전을 뽑기 위해서일까. 용석과 AV배우의 베드신은 너무 길고 카메라는 여성의 가슴 등 신체 부위를 집요하게 담아낼 뿐이다. 현아가 수연의 치부를 손에 쥐고 협박하고 모욕을 주는 과정마저도 굳이 속옷만 입고 등장해 실소를 자아낸다. 그래서 배우들의 열연이 더 안타깝다. 박해일은 이상적인 교수가 권력욕에 눈뜨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수애는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날카로운 욕망을 설득력있게 표현했다. '상류사회'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있었겠지만 경로는 확실히 벗어났다. 자극적인 요소들이 장점들마저 갉아먹었다. 29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