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낮 기온이 37도에 육박했던 폭염 속에 약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다음달 8일 재개하는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에서 편의점 판매약 품목 확대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심의위에서 제산제(겔포스)와 지사제(스멕타)를 추가하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대한약사회 측의 자해소동으로 최종 결정이 미뤄진 바 있다.

약사회는 그동안 편의점 판매약 품목을 늘리는 것이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며 반발해왔다. 오히려 현재 판매 중인 13개 의약품 가운데 ‘타이레놀500㎎’과 ‘판콜에이’ 등은 오ㆍ남용 우려가 커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타이레놀500㎎은 2016년 기준으로 편의점 상비약 판매액의 35%를 차지할 만큼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품목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약사회의 이같은 목소리를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 ‘제 밥그릇 지키기’로 보는 시선이 강하다. 약국에서도 타이레놀과 같은 유명약은 특별한 복약지도 없이 처방해주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업계 한 관계자는 “오ㆍ남용 등이 우려된다면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방법을 생각해야지 판매 자체를 못하게 하는 건 소비자 건강권이 아닌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약사회 측 주장이 휴일이나 심야시간대 약이 필요한 소비자의 편익 증진과는 배치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16년 복지부와 고려대 약학대 연구진이 발간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 시행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소비자 1389명을 대상으로 편의점 상비약 편의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3.9%가 ‘편하다’고 답했다. 또 구입 이유로 ‘공휴일ㆍ심야시간에 약이 필요한 경우’가 전체의 72.9%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국민건강 수호 약사궐기대회’.  [제공=연합뉴스]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국민건강 수호 약사궐기대회’. [제공=연합뉴스]

한 편의점 체인이 상비약 판매와 관련해 내놓은 통계에서도 최근 3년간 전체 상비약 매출 가운데 주말 비중이 40%, 자정~오전 6시 비중이 20%로 나타나 취약시간대 의약품 접근성 문제를 크게 보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일본 등에선 상비약 수준의 의약품을 약국과 편의점 뿐 아니라 일반 슈퍼 등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품목 수도 미국과 일본이 각각 3만가지, 2000가지 종류에 이른다.

상비약 품목 확대 저지에 필사적인 약사회가 일부 사실관계를 호도해 소비자 불안감을 조장하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약사회 측은 안전상비의약품 제도 시행 후 타이레놀 등의 부작용 보고가 증가했다고 주장해왔다. 국내에 보고된 타이레놀 500㎎의 부작용 보고 건수가 2013년 80건, 2014년 86건, 2015년 88건으로 소폭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 판매량이 2013년 7751만정에서 2014년 1억38만9000정, 2015년 1억1825만정으로 크게 늘어난 만큼 이상사례 보고율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약사회가 주장하는 타이레놀 성분 ‘아세트아미노펜’의 부작용 보고건(사망 6건, 시각이상 20건, 실명 2건)도 타이레놀 판매사 한국존슨앤드존슨이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확인한 결과 인과성을 명확하게 확정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능성 있음’이 1건 있으나 이는 기저 질환이 있는 사례인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상비약 판매와 관련해 오ㆍ남용이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제약업계와 시민단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는 당연히 뒤따라야할 조치이기도 하다.

편의점주와 파트타임 근로자까지 모든 판매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판매가 매뉴얼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정부는 철저하게 관리ㆍ감독할 필요가 있다. 또 복지부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소비자들이 ‘안전상비의약품’이 무조건 안전한 것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해당 용어를 ‘상비의약품’으로 바꾸는 등 정부의 보다 세심한 관심과 주의도 필요해 보인다. 물론 방점은 ‘소비자 편익 우선주의’에 찍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