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밀린숙제 하는 기간…일반인 직장 휴가와는 달라
휴정기가 오면 민사를 담당하는 A 판사는 더 바빠진다. A 판사에게 휴정기란 이른바 ‘깡치사건’을 해결하는 시간. 깡치사건이란 어렵고 복잡해 시간을 많이 요하는 사건을 뜻하는 법조계 은어다. 난해한 깡치사건들을 휴정기에 처리하지 못하면 향후 일이 힘들어진다.
A 판사는 최근 2년간 2주간의 휴정기 중 3일만 가족들과 강원도 등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나머지 시간에는 휴정기 이후에 선고를 내리기 위해 판결문을 검토했다. 휴정기에 꼼꼼히 살펴보고 판결을 내리려고 어려운 사건들은 일부러 선고기일을 휴정기 직후로 잡아 놓았다. A 판사는 “휴정기란 밀린 숙제를 해결하는 시간에 가깝다. 마냥 쉴수 있는 일반 직장의 휴가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했다.
형사를 맡은 B 판사의 경우 더욱 심하다. 그는 휴정기가 와도 휴가없이 일한지 2년째다.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구속적부심사를 맡은 데다 신청사건까지 처리해야 해 법원을 떠날 수 없다. B 판사는 휴정기에도 늘 나오던 시간에 출근해 업무를 볼 계획이다. 주말을 이용해 하루 이틀 서울 근교를 다녀오는 것이 B 판사가 생각하는 휴식 계획의 전부다.
서울중앙지법은 오는 28일부터 8월8일까지, 서울고등법원은 8월 14일까지 이른바 ‘휴정기’에 들어간다. 구속사건 등 판결이 시급한 일부 형사 사건을 제외하고는 공판이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산적해 있는 사건들 때문에 판사들은 형사부, 민사부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휴가를 반납한다. 그날 그날 진행해야 하는 재판 때문에 살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장기 미제 사건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보통 쟁점이 많고 어려운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민사부의 경우 휴정기 이후 2주 정도면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선고가 쏟아진다. 이 시기를 이용해 법조 보고서를 작성하는 판사들도 많다.
형사부의 경우 그 특성상 쉬는 것이 더 어렵다. 형사 사건에 대해서는 휴정기에도 지속적으로 선고 재판이 열린다.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어 재판을 빨리 끝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신체의 자유를 제약받는 구속 피의자들에게는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할 필요성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휴정기를 알뜰살뜰하게 이용하는 법관들도 있다. 한 판사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매번 휴정기마다 일주일씩 휴가를 내긴 어렵다. 지난해 휴정기에 열흘 정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한 판사도 이번 휴정기에는 단 하루도 휴가를 내지 않고 밀린 ‘깡치사건’을 처리키로 했다.
법원 관계자는 “휴가는 원칙적으로 판사들이 알아서 하는 재량사항”이라면서도 “실제로 휴정기에 휴가를 즐기기보다 밀린 판결들을 해결하는 시간으로 이용하는 판사들이 더 많다”고 했다.
이수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