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한송이를 들고 그의 영정 앞에 섰을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갔건만, 영정 속 화사하게 웃는 그의 얼굴 앞에선 억장이 무너졌다. 상주와 미망인 손을 잡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생이 참 허망타. 이럴줄 알았다면 미리 작별 인사라도 했어야 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마지막 소주라도 한잔 했었어야 했는데….

얼마전 그는 내 카카오스토리에 들어와 메시지를 남겼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그는 “요즘 마이 아파요. 휴식이 필요할 듯 하네요”라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암에 걸렸지만 그의 투병생활은 씩씩했다. 직장에선 표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몇년동안 힘은 달려 보였지만, 표정은 밝았다. 아니, 밝으려고 노력했다. 걱정을 보내는 내게 늘 “염려마세요. 좋아지고 있어요. 언제 한잔 해야죠?”라곤 했다.

고인과 난, 특별한 사이였다. 처음부터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따뜻했고, 합리적이었다. 국정원 직원보다 어떨땐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고, 어떤 고위 공무원보다 그의 분석은 예리했다. 성격도 살가웠다. 조용하면서 다정한 어투는 그에 대한 믿음으로 이끌어줬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법. 그를 위해 그렇게 까지는 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 이유중 하나였다.

그는 내 재능을 알아줬다. 내 글솜씨를, 내 분석력을 칭찬해줬다. 어쩌다 칼럼이라도 쓰면 장황하게 옳고 그름을 얘기해줬다. 그래서 우린 어울렸다. 나는 그를 알아봤고, 그는 나를 알아봤다.

그런 그가 이제 고인이 됐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정겨운 눈빛도 더 이상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게 됐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온갖 얘기가 나오고 있다. “유병언이 겨울에 이미 숨졌다”, “조희팔처럼 살아 있다”는 등의 괴담이 횡행 중이다. DNA검사와 지문 검사를 거쳐 확인을 했다고 하는데도 이상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갑자기 ‘괴담 대한민국’으로 돌변했다. 검찰과 경찰의 어이없는 수사, 결국 시신 뒤를 쫓은 것으로 결론 나면서 검ㆍ경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검ㆍ경발(發) 블랙코미디다. 별장 벽장 속에 숨은 유 씨를 놓치고 한달간 쉬쉬했다는 사실까지 뒤늦게 확인되는 마당이고 보니, 검찰에 화가 나면서도 애처롭기까지 하다. ‘(유 씨의)꼬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고 큰소리치던 검찰은 ‘뻥쟁이’가 됐다. ‘대한민국 막강 검찰’은 온데 간데 없고, 갑자기 누더기가 돼 버렸다. 차라리 1970~80년대 안방을 누비던 원조 따발총 ‘수다 아줌마’ 김영하 씨가 유행시켰던 ‘뻥이야~’라고 하면 차라리 웃기나 했을텐데.

나로서도 뭔가 석연치 않고, 정리가 안된다. 아, 진실을 알고 싶다. 이럴때 고인이 옆에 있었다면 “김 부장, 그건 이렇고 저건 그런거야”라며 어지러운 세상에 같이 빙빙 돌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줬을텐데.

그래서 유독 그가 그립다. “행님아, 훗날 아주 먼 훗날 그곳에서 만나 소주 한잔 할때 오늘의 진실을 알려주소.”(고 황인철 경총 이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김영상 사회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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