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약육강식의 정글이 따로 없다. 극장가에서 상생의 미덕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소규모 영화들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라인업을 피해 개봉일을 정하고 마케팅 및 배급 계획을 짠다. 하지만 대작 배급사들은 개봉일을 돌연 변경하거나, 개봉일에 앞서 변칙 상영으로 관객수 확보에 나서면서 중·소규모 배급사들을 황망하게 만들고 있다. 흥행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다른 영화들의 사정이야 남일일 뿐이다.
최근 ‘혹성탈출: 반격의 시작’(이하 ‘혹성탈출2’)이 개봉일을 돌연 앞당기면서 변칙개봉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혹성탈출2’의 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측이 미국 개봉이 7월 10일로 결정되자 이에 맞춰 당초 예정된 16일에서 개봉일을 한 주 앞당긴 것이다. 해외에서 먼저 개봉할 경우, 국내 개봉 전 불법파일 유포 등의 문제로 흥행에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보타지’ 수입사 (주)메인타이틀픽쳐스 측은 “‘사보타지’ 국내 개봉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총력을 다했다. 영화시장의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변칙개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도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급작스런 개봉 변경은 영화계 상도의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결정을 뒤집진 못했다.
결국 ‘사보타지’ 측은 개봉일을 24일로 미뤘다. ‘주온: 끝의 시작’과 ‘유오성의 7인의 암살단’도 개봉일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당초 계획보다 한 주 늦은 16일 개봉을 결정했다. 세 영화 모두 10일 개봉을 목표로 홍보해온 만큼 관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점 등에서 손해가 크지만, ‘혹성탈출2’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사태로 ‘전야 개봉’, ‘유료시사회’ 등의 이름으로 관행처럼 자리잡은 변칙개봉의 문제에 대해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야 개봉’은 정식 개봉일 하루 전에 개봉하는 것을, ‘유료 시사회’는 개봉일 1~2주 전 주말에 유료로 상영하는 것을 뜻한다. 배급사들이 변칙 개봉을 택하는 것은 이 관객수도 공식 집계에 포함될 뿐만 아니라, ‘전석 매진’ 등의 이슈로 입소문 내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해당 영화와의 맞대결을 피해 먼저 개봉한 영화들은 억울할 수 밖에 없다. 이창언 (주)메인타이틀픽쳐스 대표는 “대개 금요일에 극장 쪽에서 개봉관을 조정하는데 갑자기 블록버스터 영화가 끼어들면 다른 영화들은 예상했던 것에 훨씬 못 미치는 스크린수를 확보할 수 밖에 없다”며 “결국은 스크린독과점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한 영화가 20%의 점유율을 넘지 않게 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처럼 국내에서도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