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8만9004곳 각각 자치권 지역민 ‘내 일’ 인식에 높은 투표율 5개 州 ‘기호용 대마초’도 합법화

연방정부는 국방·외교·州간 조정 자치정부는 인사·조세·검찰·경찰권 연방-지방 갈등지속땐 소송 해결

[솔트레이크시티ㆍ로스엔젤레스(미국)=이태형ㆍ박병국 기자] 지난해 11월 이른 추위로 아침 기온이 영하권을 기록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의 SLCO 가버먼트 센터(Government Center). 하원과 시의원, 교육위원을 뽑는 일반선거 투표소가 차려진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선거다. 미국에서는 8만여개의 자치정부단위가 있어 저마다의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아침 7시 이른 시각임에도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로 붐볐다. 현장에서 만난 선거관리원인 마리아나 알러(45)씨는 “노숙자 문제가 지역 정치 쟁점이 되고, 마리화나 규제를 놓고도 규제하겠다는 연방 정부와 의학적 이용을 확대하자는 주 정부가 대립하고 있다”며 “정책결정과정에서 지역민들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사안들이 많다”고 높은 투표열기를 설명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머트(Muttㆍ45) 씨는 “투표권자로서 카운티와 시의 일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면서 “시 정부와 주 정부가 갈등을 빚는 일이 있지만, 투표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시키고 이를 통해 시 정부와 주 정부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유타주 드레이퍼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는  주민들.
미국 유타주 드레이퍼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는 주민들.

이날 투표소가 차려진 건물 앞에는 ‘드롭박스’(ballot drop box)도 눈에 띄었다. 도로나 주택가 인근에 설치된 드롭박스는 운전중인 유권자들이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투표용지를 넣고 바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든 ‘간이 투표소’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14년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우편투표’를 도입하면서 함께 도입한 드롭박스는 이날 유타주에만 55개가 설치됐다.

드롭박스에 투표용지를 넣은 리치(Richㆍ47)씨는 “도시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며 투표를 하는 것은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투표박스가 투표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개별주마다 독립된 ‘또 하나의’ 정부=국내에서 지방분권형 개헌 논의가 진행중인 가운데 연방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와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시티를 찾았다. 미국은 50개의 주가 하나의 국가처럼 움직이는 나라다. 연방(중앙) 정부와 주 정부가 각각의 통치권을 갖는다. 연방 정부는 국방, 외교, 각 주간 관계 조정 등 헌법에 열거된 제한된 권한만 갖고, 주 정부는 연방 정부의 권한을 제외한 나머지 권한을 모두 갖는다. 주 정부는 지방 정부 조직권, 인사권, 의회, 조세, 법원, 검찰ㆍ경찰권 등 지역 통치와 운영에 필요한 대부분의 권한을 갖는다.

분권의 대표적인 예가 사형제다. 연방대법원이 1972년 사형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뒤 4년뒤 합헌으로 다시 번복했지만, 뉴욕 등 18개주는 주 헌법 위반으로 폐지했다. 사형제가 있는 주는 그 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대마초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에서 대마초가 합법화 돼 있는 주는 24개주로, 이중 5개 주는 기호용 대마초까지 합법화돼 있다. 나머지는 의료용 대마초가 합법이다.

최저임금을 결정할때도 주마다 차이가 난다. 미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지만, 유타주는 10.25달러, 캘리포니아 주는 10.5달러로 규정하고 있다.

연방제를 통한 지방분권은 시군구까지 확대된다. 미주 전역의 지방 정부 단위는 8만9004개로 각 단위는 ‘자치권’을 갖게 된다. 주가 결정하고, 주 밑에 있는 카운티와 시도 각각의 분권을 실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최저임금의 경우, 로스엔젤레스시의 최저임금은 13.25달러로 주 정부의 최저임금과 차이가 난다. LA시의 최저임금은 LA카운티 정부가 결정한 최저임금 인상 조례안에 따른 것이다.

▶주민발의 등 ‘풀뿌리 자치’ 제도화=미국의 지방분권을 유지하는 기둥은 ‘풀뿌리자치’다. 선거는 풀뿌리 자치의 핵심이다. 미국 유타주 드레이퍼시에 시의원 후보로 나선 바 있는 허버트 허(한국명 허용환)씨는 기자와 만나 “미국의 경우, 주내 재무국장도 선거를 통해 선출될 만큼 지방분권이 구조화 돼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민발의와 주민투표’가 풀뿌리 자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주민발의는 유권자가 직접 법률안을 만드는 제도로, 이는 주민투표로 완성된다. 주민발의 주체를 유권자 개인으로 한정하고 발의 대상에서 세금, 부담금 등을 제외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개인은 물론 단체도 주민발의를 할 수 있으며, 세금, 부담금 등 그 대상이 더 다양하다.

지난 7일 이뤄진 유타주 일반선거에서는 시장, 시의원 뿐만 아니라 캐니언 교육구(Canyon School District)와 그래나이트 교육구(Granite School District)의 채권발행을 위한 투표도 함께 진행됐다. 노후화된 학교시설을 짓기 위해 각각 200만 달러가 넘는 채권 발행이 주민발의에 의해 투표로 붙여졌고, 이날 결국 통과됐다.

캘리포니아주의 기호용 대마초 합법화도 주민투표에 의한 것이다. 저스틴 리 유타주 선거국 부국장은 “시민들이 정책의사결정과정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이는 유타주 내 주민투표와 주민발의의 증가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LA 한인타운노동연대(KIWA) 활동가로 주민발의에 직접 나선 바 있는 강두형 씨는 “찬반 입장이 팽팽해 정치인들이 직접 나서기를 꺼리는 것들에 대해 단체나 개인들이 주민발의를 통해 입법화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단체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식의 의견개진을 하고, 단체들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인다”고 자치 정치의 모습을 전했다.

주 정부와 지방 정부가 연방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지만,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갈등을 지속하며 사업자체가 무산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경우 상위 정부와 하위 정부 간에 ‘소송’이 일반화 돼 있다.

지난 9월에는 뉴욕, 워싱턴 등 15개주가 연방 정부의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DACAㆍ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을 폐지하는 것에 반발 소송을 제기했다. 또 7월에는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멕시코 국경장벽을 건설하도록 한 연방 정부의 결정이 위헌이라며,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