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겨울방학이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기대와 설렘이 가득할 만도 하건만, 실상은 다르다. 학기 중에 못했던 봉사활동, 외국어캠프에 다음 학기를 위한 예습 학원들로 오히려 더 바쁜 생활을 한다.
아이들의 시간이 없다. 꽉 짜인 스케줄에 맞춰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몸과 마음, 자율성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지난 17일 학습을 통해 공동체와 도시를 살리는 사례를 배우고자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도쿄 시부야에서 방문한 ‘하루노오가와 플레이파크’와 ‘도쿄 장난감 미술관’에서 ‘여백’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하루노오가와 플레이파크’는 2004년도에 만들어진 곳이다. 코미즈 대표는 아이들을 자연에서 놀게 해주고 싶어 만들어진 ‘시부야에서 놀 수 있는 곳을 생각하는 모임’이 마침내 ‘플레이파크’라는 공간을 구현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주지 근처에 있어 부모와 아이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여기서 부모의 역할은 없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구덩이에서 뛰고 뒹군다. 한국 놀이터에서는 아마도 금기 물품일 톱과 망치, 불이 아이들의 장난감이다. 아이들은 도구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13년 동안 플레이파크가 안전하게 운영된 까닭은 상주하고 있는 플레이리더 덕분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기도, 함께하기도 하며 삐져나온 못과 같은 위험요소를 제거한다. 아이들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을 시에는 숨기지 않고 빠르게, 제대로 대응한다.
플레이파크에서는 부모들도 자유시간이다.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저마다의 여유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바빴던 일상 중 여백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폐교에서 연간 15만 명이 방문하는 곳으로 변신한 ‘도쿄 장난감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미술관에 있는 모든 장난감은 일본에서 자란 나무를 가지고 일본의 장난감 장인들이 만들었다. 도심 한가운데에 나무를 가지고 아이와 부모가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이든 만져볼 수 있고, 어디에서든 눕고 앉고 뛸 수 있다. 부모들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여백이 있는 미술관이다.
대신 플레이파크의 플레이리더처럼 이곳에는 자원봉사자가 있다. 봉사자는 대부분 동네의 학부모들이다. 책임디렉터 하루미상은 “봉사자와 아이, 봉사자와 부모의 관계는 이곳의 큰 자산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이가 자라는 시간 동안 몇 년간 지속된 그 관계는 견고해지고, 살아있는 이웃, 살아있는 동네를 만든다.
이제는 10년을 운영한 노하우로 근처의 학교들과 자매관계를 맺어 확장된 놀이·학습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소외되는 주민이 없도록 이웃의 관계망이 촘촘해지는 것이다. 현재는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폐교활용 방안으로 주목받아 여기저기서 벤치마킹을 한다고 하니 지역의 자산임에 다름없다.
플레이파크와 장난감 미술관 두 곳의 공통점은 “우리 아이는 우리 아이가 키운다”는 정신으로 주민들이 주도가 되어 운영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주민이 원하는 ‘여백’이 공간에 반영되고, 비로소 바쁜 일상에서는 돌아보기 힘들었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여백이 있는 마을’이란 모든 주민이 나의 공간처럼 여기고 일상의 어려움을 털어버릴 수 있는, 주민친화적인 공간이 존재하는 마을이다. 다양한 시설에 주민을 위한 여백이 잘 갖춰진다면, 프로그램이 없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프로그램 없는 프로그램’ 덕분에 오히려 주민의 창의성과 자유가 발현될 수 있다. 삶을 조금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해줄 그런 마을이 우리 주변에도 생겨나길 바란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