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에 가까운 복싱 역사를 훓?어 보면 이색적인 직업을 지닌 수많은 복서들이 제법 있습니다. 1948년 전국학생선수권(최우수상)과 전국체전을 휩쓸었던 염보현(LF급) 전 서울시장(31년생,고려대)을 비롯해 1955년 제36회 전국체전(웰터급) 은메달리스트이자 국민 애창곡 ‘비둘기집’을 작곡한 김기웅(36년생, 성북고-경희대)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밖에도 세광고 3학년 때인 1973년 제54회 전국체전(페더급) 은메달리스트로, ‘논개’라는 노래를 히트시키며 1983년 신인가수상을 차지한 이동기(54년생, 충북대) 씨, 최초의 동양챔피언인 강세철과 동문수학한 도 대표 출신의 정치인 권노갑(30년생, 목포, 동국대) 씨, 배우 최은희(26년생, 경기도 광주)의 첫 남편이자 전 조선 플라이급 선수권자였던 김학성(13년생, 수원) 씨. 그리고 기성선수 못지않은 수준 높은 기량을 필자 앞에서 선보였던 배우 최민수(62년생.일화 봉화체육관) 씨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복싱인들이 많습니다.
교수-복서-정치인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복서 출신의 대학교수입니다. 지난 5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벌어진 KBF 주최의 국제 경기에 모처럼 참관했다가 뜻밖에도 교수 출신의 한국프로복싱 전 웰터급 3위인 최영곤(59년생)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현재 해운대구 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 의원은 옛 가야의 고도(古都)인 김해 출신으로 1977년 낙동고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님의 권유로 부산시 충무동에 있는 극동체육관에 입관해 이영래 사범(작고)의 지도로 복싱을 배우게 됩니다. 당시엔 선수로서의 야망보다는 체력 증진에 포커스를 맞추고 복싱을 수련했던 평범한 청년이었죠. 최영곤은 당시 179cm의 훤칠한 키에 초등학교 때 짧게나마 축구선수 생활을 했기에 기초 체력도 나름 좋았다고 합니다. 당시 극동체육관엔 장정구를 위시해 안익노-안현문 형제복서, 곽기훈, 김효성, 구상모, 최진식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실력 있는 복서들이 즐비했죠. 부산의 대표적인 명문 체육관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수련하던 최영곤은 어느 날 최진식(60년생, 천안)이라는 복서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스파링을 하게 됩니다. 최진식은 후에 1979년 제60회 대전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따고, 1982년 프로로 전향해 7년 동안 한 차례 세계타이틀전을 포함해 24전 21승(19KO)3패를 기록한 철권입니다. 최영곤은 이에 맞서 과감한 타격전으로 맞대응을 했지만 최진식의 강타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맙니다.이 대목에서 현격한 기량차를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맞대결에 응한 최영곤의 감투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권투를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웬만한 강심장이 아닌 이상 파워를 갖춘 복싱 고수와의 스파링은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강한 멘탈이 있었기에 후에 최고령 타이틀 도전 등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열정으로 40세 후반까지 현역선수생활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인생 자체가 도전최영곤은 이후 군입대와 함께 복싱과 인연의 끈이 떨어졌습니다. 그저 군대에서 복서 출신의 부하가 있는 것을 알고는 그 부하와 실전을 방불케하는 스파링을 하는 정도였죠. 군 재대 후 그는 고교졸업 후 무려 8년 만인 1984년 부산대 체육교육학과에 합격해 만학도의 꿈을 이룹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의 대학스승이 조원민(작고) 교수였는데 이 분은 서울대 재학시절인 1969년 제24회 전국선수권을 차지한데 이어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미들급)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1971년에는 전국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복서 출신의 학자였습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잡지인 ‘주간한국’의 표지 모델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문무를 겸비한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복서였죠. 스피드는 없었지만 파괴력은 임재근처럼 묵직해 박남용 같은 중견 복서들이 펑펑 나가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1981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한 조원민 교수와 1984년 입학한 최영곤의 운명적인 인연은 대학 4년, 석사 2년, 박사 4년 등 10년 동안 사제지간의 인연으로 끈끈하게 이어집니다. 스승은 담백한 성격에 두주불사로 유명한 호탕한 성품이었다고 회상하더군요.링에 오른 대학교수 최영곤 의원은 졸업 후 1995년 3월부터 10년간 부산예술대 이벤트예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로복서로 전향합니다. 38세 때인 1997년 신인왕전에 출전해 준결승에서 탈락하자 이듬해인 1998년 신인왕전에 재차 도전합니다. 하지만 또 다시 결승 문턱에서 패합니다. 당시 그를 지도한 최진석 관장(58년생. 부산)은 “최 교수는 양손을 모두 사용하는 스위치 복서였고 스트레이트가 뛰어난 복서 겸 파이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관장은 강병인, 김영수, 유종훈, 용흥남 등 베테랑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지만 최 교수는 상당한 기량을 지닌 복서라고 평가했습니다. 단지 복싱에 전력투구할 수 없는 그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영곤은 승패에 관계없이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4년 4월 45살의 대학교수 최영곤은 드디어 한국 웰터급 타이틀에 도전합니다. 상대는 몽골용병으로 21살이나 어린 바이라였습니다. 이 선수는 몽골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 1998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였고, 당시 21전 18승(16KO)3패를 기록한 강타자였죠. 45세의 최영곤은 현격한 언더독으로 평가 받았지만, 배수의 진을 치고 과감하게 난타전을 벌이면서 6회 기력이 소진될 때까지 끈질지게 버티다 장렬히 산화(?)했죠.비록 최고령 챔피언 등극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승리에 겸손하며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기 후 “후회 없이 싸운 내 자신에 만족한다. 비록 KO패를 당했지만 또 다시 링에 오르겠다”고 일갈했죠. 눈앞의 장애물도 디딤돌로 생각하는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약속대로 2005년 5월 링에 올라 윤병경이란 복서와 대결해 1회 KO승을 거두며 최고령 KO승(46세22일) 기록과 함께 화려한 컴백에 성공합니다.
한국의 버나드 홉킨스들야구에서 간혹 박철순, 임창용, 송진우, 손민한 등 40대 선수들이 많은 나이에 승리해 신문지상에 오르지만 구기종목이 아닌 투기종목에서의 승리는 훨씬 더 가치가 있습니다. 최영곤은 이렇게 말했죠. “나와 맞붙는 상대는 적게는 20살 많게는 25살 차이가 난다. 그러나 한 번도 겁을 먹거나 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오직 나 자신과의 싸움이요. 세상의 고정관념이나 벽을 허무는 데 몸부림치고 싶다”고 말입니다. 어느 누군가는 최영곤을 한국의 버나드 홉킨스라 부르더군요. 만 49세 3개월 만에 WBA 라이트 헤비급 정상에 오른 홉킨스에 견준 것이죠. 참고로 한국 최고령 챔피언은 아트체육관 관장인 이경훈(64년생, 춘천)의 40세 8개월이죠. 최영곤 의원이 위대한 점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복싱을 수련한 엘리트 복싱인이 아닌 그저 순수하게 복싱이 좋아 취미생활 이상으로 수련했고,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를 복싱이란 극한 운동을 통해 검증받으려 정열을 불태웠다는 점입니다. 이는 갈수록 나약해지는 현 세태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저서 <도전과 응전>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불리한 환경에서 문명이 탄생한다”고 역설했죠. 자연 환경의 도전이 드셀수록 이를 이겨내려는 인간의 의지가 강해진다고 했습니다. 악조건 같은 진흙탕 속에서 감미롭게 피어나는 연꽃 같은 최영곤의 복싱스토리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렇다면은 최영곤은 진정한 승리자라고 생각합니다. 짧지 않은 10여 년 동안 프로복서 생활을 하면서 12전 6승(3KO)6패의 평범한 기록을 남겼지만, 그의 도전정신과 의지는 귀감으로 삼을 만합니다.
복싱사랑은 현재진행형구의원인 최영곤은 해운대구에서 한국 복싱의 부활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박용운(64년생, 부산) 관장의 든든한 조력자입니다. 그러니 최 의원의 복싱사랑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죠. 최영곤 의원은 박용운 관장을 도와 방송중계도 없이 벌써 3차례나 경기를 치렀다고 합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울산 이은식 복싱체육관의 미들급 조성재(6전승5KO승) 등 좋은 신인들이 여럿 나와 기분이 의미가 깊었습니다. 참고로 이은식(70년생, 부산) 관장은 현역시절 28전 24승(21KO)4패를 기록한 강타자 출신으로 1회 KO승만 무려 12차례나 기록한 바 있습니다. 문성길 같은 강타자도 25전을 싸우며서 1회 KO승은 단 한 차례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놀라운 펀치력입니다. 아무튼 최영곤 의원의 사랑과 관심 속에 좋은 재목이 많이 발굴되어 부산이 복싱중흥을 이끌었으면 합니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sports@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