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vs 인문계 주도권 다툼의 역사

유교 영향 1960년대까지 인문계가 주류 산업화 진전따라 이공계로 인재들 몰려…기계공학·건축공학과 선망의 대상으로 1980년대 컬러TV 등장으로 신방과 인기 1990년대 벤처붐에 IT관련 학과도 특수…외환위기 이후 대학간판보단 학과 중시

대학교 학과의 흥망성쇠는 한국 사회 변화와 궤를 같이 했다. 학과의 부침현상을 살펴보면 시대 변화상과 인재상을 읽을 수 있다. 한때 잘나가던 인기전공이 기피전공으로 추락하고 그 반대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이공계와 인문계의 주도권 다툼은 사실상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대학교육이 실질적으로 시작된 광복 이후 이십여년동안 인문계가 사회 주류를 지배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유교적인 관념에 공직을 중시하는 의식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문과보다 이과를 낮게 보는 경향이 뚜렷했고, 문과를 택하는 고교생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같은 흐름에 변화의 물꼬를 터 준 것은 산업화였다. 한국 경제가 고속성장하면서 대학교육과 전공선택에도 시장논리가 스며들었다. 1960년대에는 여전히 인문계가 주도권을 장악했다.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으로 인식되면서 사범대와 교대가 많은 인재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러나 이시기부터 이공계는 서서히 주목받는다. 섬유와 가발, 치약, 비누, 설탕, 밀가루 등 경공업 위주로 이뤄진 산업구조상 화학공학과와 섬유공학과가 인기를 끌었다.

정부가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을 펴던 1970년대에는 이공계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역전현상이 펼쳐진다. 중동건설 붐과 중공업의 발전으로 기계공학과와 건축공학과가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남고에서는 이과학생이 70~80%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인문계에서는 파워엘리트의 산실로 꼽히던 육군사관학교의 인기가 높았다. 국문과, 영문과 등도 입학점수가 높게 형성됐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부터는 속된 말로 ‘돈 되는’ 학과에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1980년대에는 발전소 건설 붐과 조선 수주 열기 등이 한창이었다. 전자와 반도체 산업도 성장가도에 올랐다. 원자력공학과와 조선공학과 등이 특수를 누렸고, 전자공학과도 상종가를 누렸다.

당시에는 컬러TV가 등장하면서 미디어산업도 급성장하던 때였다. 방송산업 발달로 언론계와 광고계가 주목받으면서 신문방송학과와 광고학과 등이 인기학과로 급부상했다.

1990년대에는 웰빙 열풍과 고수익 등을 발판으로 한의학과, 치과, 의예과 등이 인기를 누렸다. 벤처붐이 일면서 IT 관련 학과에도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인문계에서는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노어노문학과와 중어중문학 등이 인기를 끌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대학학과 판도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때부터는 대학 간판보다는 학과를 중요시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이 연구개발(R&D) 인력을 우선 감축하면서 이공계 지원자가 대거 줄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된 1993년 무렵 비슷해진 문ㆍ이과 비율은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이공계가 약세를 보이면서 문ㆍ이과 지원자 비율은 2002년 7대 3으로 바뀌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바이오산업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져 생명공학 계열 학과들이 급부상했다. 한류열풍과 방송매체의 확산 등으로 방송ㆍ연예 관련 학과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권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