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140개국에 판매…‘진의 진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늘 곁에 두고 사랑한 술 250여년 간 공개되지 않은 완벽한 제조법 ‘세계 최초 칵테일’의 탄생…진토닉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어떤 일이든 자신의 이름을 건다는 것은 굉장히 책임이 막중한 일이다. 자신과 가문의 선대, 후대에까지 영향을 주기때문이다. 여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로지 술 하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있다. 기네스, 조니워커, 스미노프 등 한번쯤 들어본 이 술들은 사실 사람의 이름이다. 누군가에게 ‘인생술’로 칭송받는 명주 중에는 창시자의 이름을 건 술들이 상당히 많다. 이 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백년 간 이 술이 후대에 이어질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한 잔의 술을 위해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

<6>고든스=18세기 초반 영국에 들이닥친 ‘진 열풍(Gin Craze)’은 대단했다. 진을 판매하는 ‘진 숍(Gin Shop)’이 영국에만 12만 곳에 달했다고 하니 온 나라가 진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날 전세계 진 마니아에게 사랑받는 ‘진의 진수’라 불리는 정통 런던 드라이 진 고든스(Gordon’s)를 배출한 나라 영국. 18세기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689년 네덜란드 총독 출신으로 네덜란드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왕위에 오른 윌리엄 3세는 프랑스를 압박하기 위해 영국 내 와인브랜디의 주세를 높이는 대신 네덜란드 국민 술로 대표되는 진의 주세는 낮춘다. 이때부터 진이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이 되기 시작한다. 1720년대에는 영국 곳곳에서 진이 생산됐다. 설탕을 비롯해 페인트나 물감을 녹이는데 사용되던 테라핀유 등 저급한 재료로 만들어진 술도 나타나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번졌다.

오늘날 전세계 140여개 국에서 판매되는 세계 넘버 원 진으로 불리는 고든스(Gordon’s)의 창시자 알렉산더 고든(Alexander Gordon)은 이 같은 ‘진 열풍’ 속에서 원칙없이 만들어지는 진에 대해 안타깝게 여겼다. 결국 직접 나서 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고든은 1769년 첫 증류소를 영국 서더크 지역에 세운 뒤 1786년 런던 중심부의 클러켄웰(Clerkenwell)로 이전하게 된다. 고든의 철학은 완고했다.

“설탕을 넣지 않고도 그 어떤 격조 있는 자리에서도 잘 어울릴 수 있는 훌륭한 풍미의 진을 만들겠다.”

이러한 정신이 서려 있는 고든스는 단맛이 없고 쌉쌀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런던 드라이 진 중에서도 가장 고풍스러운 맛을 지니고 있다. 깨끗한 주니퍼 향을 기본으로 하는 고든스는 호기심 넘치고 품질 과의 타협을 모르는 알렉산더 고든의 정신을 고스란히 응축하고 있다.

영국 해군들에게 특히 사랑 받은 이 술은 군인들에 의해 식민지로 빠르게 확산됐다.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고든 가(家)를 상징하는 야생 멧돼지가 새겨진 고든스 병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고든은 고든스의 성공에 대해 최상품의 재료와 증류법의 완벽한 조합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18세기에 완성된 고든스의 완벽한 제조비법은 약 250년이라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철통 보안 속에서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까지도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제조비법을 전수해 고든스의 완벽한 맛과 향을 지켜내고 있다.

고든은 1858년까지 완벽한 진을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의 이 같은 노력은 주류 역사에 길이 남을 ‘세계 최초 칵테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상쾌한 칵테일’로 불리며 많은 칵테일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진토닉(Gordon’s & Tonic)’이 바로 그것이다. 고든은 오늘날 영국 병사들이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마셨던 ‘토닉워터’에 고든스 진을 더한 맛이 궁금해 둘을 섞어 마시게 됐다. 그는 곧 처음 맛보는 청량하고 상쾌함에 반하게 된다. 그때부터 진토닉은 영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최고의 칵테일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고든스는 다른 진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향과 묵직한 맛과 그 고집스러운 장인 정신으로 1925년 영국 국왕 조지5세(King George V)에 최초로 왕실인증서를 수여 받기도 했다.

고든스가 현존하는 런던 드라이진 가운데 단연 최고로 추앙받는 이유는 진의 주요 원료인 주니퍼 베리의 수확단계에서부터 최고의 증류전문가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수확과정을 직접 검사한 뒤 최상위 10% 만을 엄선해 제조용으로 사용한다. 또 고든스 특유의 부드러움은 10일 간 3회에 걸친 증류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고수풀 씨앗, 감초 뿌리, 오렌지 및 레몬 껍질을 포함하고 있지만 약 25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자세한 제조법은 외부에 공개되고 있지 않다. 오직 소수만이 제법을 전수하며 정통 런던 드라이 진의 전통을 잇고 있다.

이후 1898년 고든스와 ‘진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또 다른 영국의 진 ‘텐커레이(Tanqueray)’가 합병하면서 뛰어난 역사와 매력을 지닌 두 진 브랜드가 제1급 진 메이커로 급부상한다. 후에 고든스와 텐커레이는 세계 최정상 프리미엄 종합 주류 회사 디아지오(Diageo)에 인수되는데 이로써 고든스는 위스키, 맥주, 보드카, 와인 등을 보유한 디아지오의 포트폴리오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20세기 미국 문학의 거대한 전설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일생을 곁에 두고 사랑한 술이라고 전해지는 고든스는 진의 주 원료인 주니퍼 베리(노간주 나무 열매)와 다양한 허브를 사용해 독특하고 상쾌한 향을 품고 있다. 헤밍웨이는 고든스를 두고 “몸과 마음에 난 모든 상처를 달래고 치유해준다”고 말하며 각별한 애정을 표한 바 있다. 이렇듯 1933년 미국의 금주법이 폐지된 이듬해 뉴저지에 증류소를 연 고든스는 미국 시장에서도 사랑 받는 술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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