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영화 ‘그녀’의 뼈대는 흔한 사랑 이야기다.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의 연인이 인공지능 운영체제(OS)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라는 점이 색다를 뿐,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고 갈등하고 이별을 겪는 과정은 익숙하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과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다.

화면을 가득 채운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인에게 달콤한 고백을 전하는 그의 얼굴은 들떠있다. 카메라가 그의 얼굴에서 멀어져 컴퓨터 모니터로 옮겨 가면서 관객은 그 고백이 테오도르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손편지 대필 작가인 그는 타인의 사연 속에서만 온기를 느낀다.

집으로 돌아온 테오도르의 얼굴엔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열렬히 사랑했던 아내와는 별거 중이다. 홀로 샌드위치를 씹으며 게임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밤이면 쉽게 잠들지 못한 채 채팅방을 전전한다.

메마른 그의 얼굴에 생기를 찾아준 건 다름 아닌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 그녀는 육체가 없다는 것만 빼면 완벽하다. (인터넷 검색 능력과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지성미 넘치고, (목소리를 분석하는 능력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안다. 낙천적인 데다 제법 농담까지 한다.

사만다 덕분에 마른 낙엽같던 테오도르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때로는 혼란스럽거나 초조한 얼굴이 되기도 한다. 영화 내내 카메라는 그 얼굴을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밀착해 담아낸다.

테오도르의 얼굴이 자주 클로즈업 되는 이유는 사만다가 모바일 기기 속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사만다의 시점을 취하려면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 듯 테오도르의 얼굴을 당겨 잡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스크린 속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건 클로즈업 때문 만은 아니다. 대개 로맨스 영화에서 연인이 함께 등장하지만, ‘그녀’에선 테오도르 홀로 화면을 채운다. 사만다는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액션도 리액션도 모두 테오도르의 몫인 셈이다.

더군다나 테오도르는 표정을 감추거나 거짓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다. 대개는 연인이 눈 앞에 있으면 어떤 상황에선 감정을 숨기기 위해 거짓 표정을 짓기도 한다. 연인의 따분한 얘기에도 억지웃음을 보이는 식이다. 시선에서 자유로운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느끼는 감정을 계산없이 얼굴에 드러낼 수 있다. 테오도르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표정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다만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을 ‘결정적 한방’으로 꼽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음성이 아닌, 그녀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는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교감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애초에 ‘사만다’ 역할을 사만다 모튼이 녹음했지만, 뒤늦게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로 교체한 감독의 변덕을 이해할 수 밖에.

이혜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