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곧 희망이잖아요.”
올해로 벌써 9년째, 해마다 5월이면 어김없이 안방을 찾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믿기 힘든 비극 앞에 꺼내놓은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더 힘들게 하지 않을까 우려도 컸다지만, 반응은 전혀 달랐다. “역시 ‘사랑’”이라는 호평과 든든한 응원의 글이 이어졌다. 작지만 따뜻한 울림으로 안방의 또 다른 치유제가 된 MBC ‘휴먼다큐 사랑’이다.
아홉 번째를 맞은 올해 방송에 등장한 주인공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아이들이었다. 가족들이 돌볼 여력이 없어 아동복지시설 삼혜원에 옹기종기 둥지를 튼 뇌병변을 앓고 있는 듬직이와 친구들( ‘꽃보다 듬직이’), 뇌종양을 앓고 있지만, 밝고 야무진 연지( ‘날아라 연지’), 희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수현이( ‘수현이, 컵짜이나’)의 이야기가 시청자와 만났고, 샴쌍둥이 호건 자매( ‘말괄량이 샴쌍둥이) 편이 2일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
‘휴먼다큐 사랑’의 아홉번째 이야기를 그려낸 주인공은 이모현, 유해진 PD다. 최근 서울 여의도 MBC에서 만난 두 사람에겐 ‘휴먼다큐 사랑’이 쌓아온 지난 9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다음해 ‘휴먼다큐’의 연출을 맡을 PD를 결정한 뒤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해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루트를 동원해 주인공을 찾죠. 블로그, 카페, 지역신문, 타사의 다큐멘터리. 누가 봐도 사랑이 넘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는 분들, 감동과 교훈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을 찾고 있어요.”(유해진 PD)
“누구나의 삶에 드라마는 있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는 시간은 꽤 길다. 개인 블로그에 올라온 댓글까지 확인하며 무수한 사연 속 주인공을 석달에 걸쳐 만난 뒤에야, 2명의 PD에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주어진다. 놀라운 인연으로 맺어진 만남이다.
출연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당연히 쉽지 않다. 카메라 앞이 불편한 일반인을 제작진의 의지로만 촬영에 응하게 하는 것이 그리쉬운 일은 아니다. 촬영에 돌입하면 최장 6개월, 수백 시간에 걸쳐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가슴 저미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곱씹어야 하고, 촬영 중 예기치 않게 아픈 일을 겪기도 한다. 이모현 PD는 “섭외는 당연히 쉽지 않지만, 처음엔 거절하다가도 ‘휴먼다큐 사랑’이니까 한 번 해보겠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휴먼다큐 사랑’이 가진 ‘시간의 힘’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휴먼다큐 사랑’이 지난 9년간 그려온 사랑의 모습은 아프지만 따뜻하다. 희귀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 그 곁을 사랑으로 지켜주는 가족들, 숨이 끊어질 듯한 병마와의 싸움이 일상의 연속이면서도 삶의 끈을 놓치 않는 사람들의 치열하고 긴 이야기가 카메라 안에 담담하게 담긴다. 이미 ‘휴먼다큐’라는 타이틀을 안고 나온 방송다큐는 넘쳐나지만, 일년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결과물을 내놓는 휴먼다큐는 이 프로그램이 유일하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동안 제작진은 작위성은 배제한 상태에서 오로지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과잉된 감정’을 불어넣지도, ‘편집의 기교’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 안에서 나오는 사랑 이야기는 곧 희망이 된다. “제작진 역시 편집을 할 때마다 눈물이 절로 나는 상황들이 많아요. 하지만 ‘휴먼다큐 사랑’에선 우리의 감정을 넣고 싶지 않았어요. 최대한 관찰하는 대로 객관적으로 담아내려 하고, 자막 역시 출연자들이 하는 이야기만 넣고 있어요. 해석은 오로지 보는 사람에게 맡기는 거죠.”(이모현 PD)
제작진의 판단은 시청자들에게 통했다. 방송 이후면 시청자들은 담백하게 그려진 그들의 삶 안에 도리어 깊숙히 들어간다. 시청자 게시판엔 올해에도 작은 생명들의 삶을 응원하고, 나를 반성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가득 메워졌다. “사랑이 주는 희소가치”에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던 때에 비한다면 숫자가 주는 힘은 약해졌지만, 수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리액션의 힘’이 매회 확인되는순간이다.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며 당연한 사실들에 대한 가치를 느끼고,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다”, “‘휴먼다큐 사랑’을 본 뒤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런 사랑이 정말 세상에 있다니 정말 놀랍다”는 반응은 제작진에겐 더없이 고마운 후기들다. 역시 수많은 사연 속 주인공을 만나며 시청자 못지 않게 제작진도 작은 변화를 마주한다.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고,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선의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 분들 덕분에 우리가 안심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요. 사람의 선의를 믿게 되고, 세상이 살 만하다 느끼게 됩니다.”(이모현 PD)
“세월호 침몰 사고는 한국 사회에 관행적으로 내려온 편법, 탈법이 큰 문제를 야기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그간 돈, 명예, 성공을 위해서 편법, 탈법을 얼마나 묵인하고 방조해왔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일이었죠. ‘사랑’에서 만나는 주인공들은 평범한 이웃들, 미약한 힘을 가진 존재들의 이야기에요. 그런 평범한 이웃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고, 우리 사회에 기층과 기간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죠. 그들의 힘이 커질 때 이 사회의 건강성이 확보될 거라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더 감동적으로 보이는게 아닐까요.”(유해진 PD) ‘휴먼다큐 사랑’을 따라오는 시청자 반응을 종합하면,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가치를 적어간다. 비정하고 각박한 세상에 서로를 보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치유를 받기도 하고, 사랑의 원형에 대한 갈증을 안던 사람들에겐 메마른 삶 속에 움튼 희망의 씨앗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가족의 건강, 부모님의 존재와 같은 “평범하고 사소한 것의 가치를 환기”시켜 주는 효과도 적지 않다.
이모현 유해진 PD는 때문에 ‘휴먼다큐 사랑’이 “누구나 갖고 있는 ‘선성’에 자극을 주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사랑 없는 인생은 없다”는 걸 증명하듯 “누구나의 삶에 스며든 사랑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첫 걸음이 된다는 ‘작은 기적’도 매회 느낀다. 프로그램 게시판에 주인공들을 돕고 싶다는 글이 올라오고, 십시일반 모인 후원금이 그들에게 전달된다. 연출을 맡은 PD들에겐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소박하게 사는 분들이, 자신의 삶 안에서 조금씩 보탬을 주고 싶어 연락해오는 걸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죠. 작은 변화지만, 좋은 마음과 좋은 생각이 조금씩 모여 사회를 긍정적인 힘으로 물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이모현 PD)
“젊었을 땐 세상을 멋지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지금의 이 직업이 젊은 시절의 이상과 가치를 충족시켜주고 있어 감사합니다. ‘PD수첩’을 했을 당시엔 사회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하고, 법과 제도가 바뀌는 구조적인 변화를 보며 만족스러워하기도 했어요. ‘휴먼다큐 사랑’을 연출하며 얻는 가장 큰 보람은, 사람의 마음 하나 하나를 만질 때 우리 사회의 체온이 상승할 수 있다고 느낄 때에요. 시사 다큐를 통한 사회변화와 사랑을 통한 시청자들의 마음의 변화가 함께 할 때, 더 큰 기적이 온다고 믿고 있어요.”(유해진 PD)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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