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법이슈=김은수 기자] 바른정당의 당 대표로 추대된 정병국 의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23일 바른정당이 오늘 당 대표에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을 합의 추대하고, 최고위원에는 김재경·홍문표·이혜훈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추대했다. 정병국 위원장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내일 창당대회에서 인준 절차를 마치면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1958년생인 정병국 의원은 1978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는데 입학하자마자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하였고 이로 인해 경찰의 수배명단에 올랐다. 포항에서 도피하던 중 1979년 10·26 사태를 접하고, 곧바로 상경하여 전국 총학생회 부활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80년 5·17 군사 정변 직후 신군부에게 검거되었다. 검거 후 신군부에서 내건 조건은 군 입대 또는 투옥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군 입대를 결심하고 해병대를 지원하여 헌병으로 사병 복무하였다. 전역 후 복학하여 1984년에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펼치게 된다. 정병국은 수배를 받으면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세인출판사'를 운영하며 서울 지역 대학교 총학생회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인쇄물들을 공급하였고 군사 정권과 투쟁하고 있는 학생들을 꾸준히 지원하였다. 그러다 1987년 6월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검거되어 고문을 받던 중 6·29 선언를 접하게 되었다.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6·29 선언으로 인하여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은 그의 변론을 자청한 민주화추진협의회 소속 변호사들이었다.그 인연으로 제 13대 대선에 참여하게 됐다. 대선 후 김영삼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통일민주당 총재비서관을,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민주자유당 대표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92년에 김영삼이 제14대 대선에서 승리하자 정병국은 1993년에 청와대 제2부속실장으로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 첫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이 되었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병국은 3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2011년 1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하였다. 정병국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4선 국회의원이 된 정병국은 2013년 새누리당(전 한나라당) 지역공약실천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정병국은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