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자진사퇴 의사를 거듭 밝혀온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유임’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국 수습을 위한 여ㆍ야ㆍ정 협의체 구성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야권은 ”친박(親박근혜) 지도부 개입 불가” 방침을 천명했다. 친박과 비박(非박근혜), 양 계파가 새 지도체제 수립을 두고 퇴로 없이 대치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정 원내대표가 사실상 유일한 여야 협상의 통로다. 정 원내대표가 최근 탄력을 받는 ‘개헌론’을 꾸준히 주장해온 것도 그의 역할론을 키우는 지점이다.

정 원내대표는 12일 임시국회 일정 및 여ㆍ야ㆍ정 협의체 구성 논의 등 정국 수습을 위한 공개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 6일 의원총회에서 재차 사퇴 의사를 밝힌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선수(選數)와 계파를 불문하고 일제히 정 원내대표의 사퇴를 만류하고 나선 바 있다. 이후 이정현 대표가 ‘동반 사퇴’를 촉구하자 정 원내대표는 “내 거취에 대해 당 대표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무슨 의도가 있는 듯한 그런 발언 또는 말 바꾸기는 예의가 아니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정국 수습을 위해 여ㆍ야ㆍ정 협의체를 구성해야 하는데 야당에서 친박 지도부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겠느냐”는 것이 정 원내대표가 입장을 번복한 핵심 이유다. 실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정 원내대표의 입지는 당내ㆍ외에서 급격히 커지고 있다. 비박계 주도 비상시국위원회 간사인 황영철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 원내대표는 당 중간지대에서 균형추 역할을 잘 수행해 왔다”며 “그 역할을 더 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보태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황 의원은 이어 “야당은 친박 지도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며 “새누리당을 대표해 정 원내대표가 역할 해줘야 한다”고 했다. 각 계파의 이해관계가 어지럽게 뒤섞인 ‘과도기’의 리더십으로 사실상 재신임받은 것이다. 비상대책위원회 수립에 난항을 겪고 있는 비박계가 ‘이 대표 선(先) 사퇴 종용 및 정 원내대표 대행 체제 구축을 통한 재창당’을 차선책으로 두고 있는 것도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지점이다. 정 원내대표 역시 “국민은 친박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현 지도부와의 선 긋기에 나섰다.

탄핵 정국 이후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다시 탄력을 받는 것도 정 원내대표에게는 청신호다. 야권이 공개적으로 개헌 특위 가동을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새누리당에서 이 대화에 참할 수 있는 ‘공식직함’ 보유자는 정 원내대표밖에 없다. 정 원내대표가 지난 9일 탄핵안 표결과 동시에 ‘개헌 세미나’를 열고 “우리가 넘어야 할 큰 산은 탄핵보다 개헌”이라고 주장한 점, 비박계 역시 개헌 및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 엽입을 고리로 한 정권 재창출을 꾀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둘 사이의 ‘연계’ 가능성도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