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보성(48)이 줄창 밀어오던 ‘의리 코드’ 하나로 인생 최대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

액션배우들의 극중에서 보여주는 뜨거운 의리는 물론 아니다. 뚱딴지 같이 반복되는 코미디 장치로서 사용되는 의리다. 선글래스와 가죽장갑, 검은 정장 차림의 강인한 남자는 셰도우복싱을 연상케 하는 격렬한 동작과 함께 신념에 찬 목소리로 ‘으리으리‘를 외친다. 이러한 언밸런스한 조합이 기묘한 웃음을 유발한다.

김보성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유머 코드 덕에 CF 출연 제의가 수십건 쇄도하고 있다. 출연 기회가 별로 없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는 아예 MC로 들어앉기도 했다.

이런 김보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다른 한 명의 배우의 이미지가 살짝 겹쳐진다. 원조 의리 캐릭터이자 그 못지 않은 터프가이인 배우 최민수(52)다. 둘은 어떤 면에서 기묘하게 닮았다. 그러나 어떤 면에선 또한 확연히 다르다.

▶의리로 웃음 준 신구 대표주자 최민수ㆍ김보성=의리를 허세로 변조하면 딱 코미디다. 최민수는 2006년 의리와 허세로 큰 웃음을 줬던 인물이다. 방황기 청소년들을 선도하자는 취지가 곁들여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품행제로’에서 멘토로 출연해 쏟아냈던 특유의 발언들이 ‘최민수 시리즈’와 같은 어록으로 유통됐다.

본인도 허세를 부리면서 타인의 허세를 준엄히 탓한다거나, 꽁꽁 언 얼음물을 ‘엄마의 양수’로 비유하며 입수하게 한다든지 하는 류였다. ‘허세부리지 마’, ‘언제까지 너의들의 어리광을 사회가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나’, ‘엄마의 양수’ 등이 대표적인 유행어다.

그러던 그가 2008년 그를 패러디한 코미디언의 닉네임처럼 ‘죄민수’로 전락하고 만다. 70대 노인을 폭행하고 지프차량에 매단 채 200m 이상을 운전한 혐의를 받고 경찰에 입건된 것이다. 그는 언론에 이 사건이 알려진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무릎을 꿇은 채 “무조건 사죄드린다”며 눈물을 흘렸다. 국민을 웃기고 울렸던 만능 배우는 그렇게 만인의 지탄을 받고 사실상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그러나 같은 해 검찰의 수사결과 최민수는 그런 범죄행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백이 밝혀져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즉시 복귀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상황. 그런데도 최민수는 2년간을 연예활동을 중단한 채 은둔했다. 후일 밝힌 바에 따르면 “노인과 연루된 사건이었기에 어쨌든 내 잘못”이라는 미련하면서 감동적인 공인 의식에서 스스로 자숙을 택한 것이었다.

현재의 의리 대표주자 김보성 역시 웃음만 팔지는 않았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을 조문하면서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고, 심지어 수중에 돈이 없으면서도 적지 않은 금액을 대출받아 그들에게 기부했다. 이런 진정성이 김보성의 현재 인기에도 반영돼 있다.

▶의리 터프가이들도 숨기고픈 패배의 추억이 있다?=최민수는 ‘형님 리더십’을 장착한 남자다. 그와 가까운 사이의 배우들이나, 오토바이 계통의 지인들은 그 프레임을 잘 맞춰준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멋지게 보이지는 않았는지 종종 공연한 오해를 사기도 하고 싸움에 휘말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최민수는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합의금으로 쓴 금액이 3억원에 달한다. 전신마취를 하고 받은 수술도 10번”이라고 고백했다.

비교적 잘 알려진 소문 하나는 최민수가 선배인 최수종에게 건방진 태도를 보이던 중 벌어진 몸싸움에서 KO패 했다는 것이다. 이후 최민수가 최수종에게 사과를 하면서 터프가이의 명성을 지킬 수 있게 소문내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는 후일담까지 붙어 있다. 그러나 이는 최수종이 상습 가정폭력범이라는 헛소문만큼이나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김보성도 싸움을 옆에 끼고 살았던 것 같다. 학창시절 의협심이 앞서 선량한 급우를 괴롭히는 불량 학생들을 상대로 싸움을 불사했다고 한다. 과거 신문을 검색해보니 97년 사소한 시비 끝에 행인 2명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된 기록도 나온다.

단, 상대를 아주 안 가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배구 레전드 마낙길 씨는 과거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운전 중 옆차량과 시비가 붙어 차에서 내렸더니 가죽장갑을 낀 김보성이 걸어오다 황급히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마침 김보성의 차에 같이 타고 있었던 코미디언 이휘재 씨가 이런 상황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이 씨는 한 TV쇼에서 김보성이 “어우! 운동선수시죠? 안녕하세요. 영화배우 김보성입니다”라고 인사하면서 이 상황을 모면했다고 ‘증언’했다.

▶연기력, 경력만 놓고 보면 단연 최민수=최민수는 개성 강한 연기파 배우다. 부친 고 최무룡을 쏙 빼닮은 외모 덕에 젊은 시절엔 그의 연기력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을 뿐이다. 카리스마는 무대와 극 안에서 먼저 빛을 발했지 장외 무용담으로 만들어진 건 결코 아니다.

한국 드라마 역대 시청율 2,3위인 ‘사랑이 뭐길래’ ‘모래시계’, 그리고 ‘걸어서 하늘까지‘ 등이 그의 주연작이다. 연말 특집극으로 만들어진 ‘아버지의 집’에서 보여준 연기는 평론가와 시청자들 모두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영화에서도 ‘테러리스트’ ‘블랙잭’ ‘리베라메’ ‘헐리우드키드의 생애’ ‘나에게 오라’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명연기를 보여줬다. “요즘 개(Dog)나 소(Cow)나 다 배우 한다”며 미숙한 배우를 탓할 자격이 있었다.

이에 비하면 김보성은 연기 인생 초기와 이후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 했다는 평을 듣는다. 연기 인생 초기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 같은 하이틴 영화의 주연으로 성가를 올렸지만 본격적인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는 데 애를 먹었다. 전작의 후광을 입은 투캅스 2에서 박중훈과 공연하면서 확실히 자리를 잡나 했지만 이후 영화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의리파ㆍ반항아 역 외에는 영 아니다”는 인터넷 촌평도 있다. 화면 안에선 의리 일변도에서 탈피해야만 하는 이유다.

이 둘이 함께 한 작품도 있다. 92년 최민수와 고 최진실이 주연했던 ‘미스터맘마’에 김보성이 우정출연 했다. 95년 모래시계에서도 김보성은 단역인 조 순경 역으로 출연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엄밀히 말하면 둘의 위상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안타깝게도 최민수와 김보성은 최신작에서 모두 죽을 쒔다. 모두 해외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최민수는 ‘어쌔신코드’에서 북한 특수부대 출신 킬러 요원으로, 김보성은 ‘영웅: 샐러맨더의 비밀’에서 격투기 선수 표도르를 돕는 특수요원으로 분했다. 작품성 평판과 흥행 성적 모두 엉망이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어쌔신코드로 영화 검색을 하면 ‘클레멘타인’과 ‘샐러맨더의 비밀’이 연관영화로 뜬다. 의리로만 영화를 찍어서는 안 되는 예다.

▶여전히 궁금해… 최민수의 발음 뭉개기, 김보성의 왼쪽 눈 부상=최민수는 최근 출연작에서도 가끔 논란이 되는 목소리 연기를 한다. 발군의 연기력에 걸맞은 분명한 발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복화술 하듯 입술을 덜 움직이거나 힘을 빼서 흐리멍텅한 발음을 내는 것이다.

최민수는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자리에서 “‘모래시계’때 일부러 발음을 흐렸다”고 말했다. ‘이러훼 하면 너흘 내 여자호…’ 역시 그런 가운데 나온 명대사다.

“쥬우신와앙이 태어나알 때 처엉룡 배액호 혀어언무 주우우작 네개의 시인물이…”(태왕사신기)는 여기에 빠르기 조절까지 한 예다. 악역 캐릭터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이런 시도를 했을 텐데, 가끔 발음을 흐려도 너무 흐려서 시청자가 못 알아듣는 게 문제긴 하다. 그의 정확한 의도는 알려지지 않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김보성이 왼쪽 눈을 실명하게 된 사연도 미스테리다. 그는 지난 2011년 방송 인터뷰에서는 그는 당시 “현재 시각장애 6급이다”라며 “20년 전 한 친구를 구해주려다 난투극에 휘말렸다. 실제로 13대 1로 싸우다가 맞아 왼쪽 눈이 실명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쌍절곤에 오른쪽눈을 맞아 잘못하면 오른쪽눈까지 실명될 뻔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난 해 다른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과거 영화촬영 중 둔기에 맞아 망막을 다쳐 (왼쪽 눈을) 실명하게 됐다”고 밝혔다. 2011년 인터뷰와 2013년 인터뷰 둘 중 하나는 와전됐거나 거짓일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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