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지금까지 발표했던 음반을 보게 됐다. 지금은 이름과도 같을 만큼 익숙해진 '유리상자'로 낸 음반 다수와 유닛 활동의 '엠포(M4)'도 있고, 함춘호와 호흡을 맞춘 '줄라이 프로젝트(JULY PROJEC)'도 있다. 불현듯 '왜, 내 이름으로 내놓은 음반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 왜 한 번도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낳았다.

머릿속으로 구상한 것이 2년 전, 본격적으로 음반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그렇게 남성듀오 유리상자 이세준의 데뷔 후 첫 솔로 음반이 탄생했다.

지난 16일 세상에 나온 이세준의 첫 솔로 음반은 리메이크 곡을 포함, 이세준이 전곡의 작사, 작곡, 편곡에 참여하며 공을 들인 작품 총 10곡이 담겨있다.

타이틀곡은 'B on D' 역시 이세준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미디엄 템포의 경쾌한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비 온 뒤 맑은 하늘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약간은 다른 '이세준'이 있다.

◆ 데뷔 17년, '이세준'이라는 이름

"더 늙기 전에 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하하"

이세준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음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 의문의 시간을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해 12월 연말 공연을 마치고 제대로 녹음을 하고 음반 작업을 시작한 건 올 1월부터다.

"이전에 제가 냈던 음반들을 쭉 보니까 정규 음반만 20장이 넘더라고요. 그 중에 '이세준'의 음반은 하나도 없는데, 나중에 자식들이 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왜 솔로는 한 번도 안 냈을까?'라는 생각을 할 것 같더라고요. 저 역시도 새삼 의문이 들었고요"

"유리상자를 한창 열심히 할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또 그룹에 해가 될까봐 못 했을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조금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이세준만의 음반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약간의 허전함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해내는 작업은 잊고 있었던 초심을 되살리기까지 했다.

"이세준이란 이름을 달고, 오롯이 다 해내야 하는 것이니까 힘들기도 했죠. 하지만 배려가 필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간섭 없이 눈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 담고 싶은 것만 했어요"

실로 오랜만에 음반에 '땡스 투'를 적었다. '1집인데,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썼지만, 확실한 건 만드는 동안 가진 기쁨과 행복함이 굉장히 컸다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만족감을 느꼈어요. 이번 음반 작업을 통해 초심도 찾고 욕심도 생긴 만큼 자연스럽게 또 다음 솔로 음반을 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이세준의 진짜 취향

"내 취향은 이런 겁니다. 하고 만족스러운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데뷔 20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세준은 항상 어딘가에 소속돼 있었다. 'OO의 이세준'으로 살아온 그가 이번 음반을 통해서는 '이세준'을 보여주고자 했다.

"보통 음반 작업을 할 때 곡의 길이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간주는 어느 정도의 길이와 템포 등등 제약도 많고요. 이번엔 그런 대중가요들의 공식을 깼어요. 또 하나, 유리상자의 이미지도 벗어버렸죠. 유리상자 특유의 바르고 착한 가사들(웃음)이 아닌,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만들었어요"

'이세준'의 것이기에 가능했고, 그래서 더 소중했다.

사실 홀로 선 그의 모습이 조금은 덜 생경한 이유는 최근 이세준의 행보에 있다. 그는 가수들이 다른 이의 노래를 부르며 평가받는 색깔의 예능프로그램 '퍼펙트 싱어 VS'와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며 새삼 주목받았다.

그는 '퍼펙트 싱어 VS'에서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를 열창, 역대 최고점을 깼다. 이후 '불후의 명곡'에서는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을 불러 우승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유리상자의 이세준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시청자들은 한 번 놀라고, 힘 있는 보컬에 또 한 번 놀랐다.

데뷔 17년에 다시 들려오는 '노래 잘한다'는 소리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저도 방송에서 구현될지는 몰랐어요. 사실 노래방 가면 되게 잘하거든요(웃음). 혼자 있어도 허전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드리자는 생각으로 센 무대를 택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자신감도 생겼어요"

"상자 안이 포근하고 좋으니까 굳이 나오려고 하지 않았죠. 안정적이었고, 또 뛰어나올 만한 용기나 절박함도 없었고요. 그냥 안주했던 것 같아요"

유리상자의 이세준은 편안함을 만끽하다 시간이 흘러 여유와 마주했다. 변화를 줄 수 있는 시기와 팬들도 솔로를 서운해하지 않을 시기가 겹쳤고, 여기에 대중들의 새로운 시선과 반응이 맞물렸다. 기회가 왔다.

"급격한 변화는 아니지만, 그래서 이번 음반에 제 취향의 것들을 많이 집어넣었고 저만이 갖고 있었던 장점들을 살려서 곡에도 반영했습니다"

◆ 이제는 나눠야 할 시기, 이세준의 책임감

'순애보'의 작사가다. 친한 친구들은 전화를 해서 "네가 쓴 것 아니지?"라고 물었고, '신부에게'로 작사가상을 받기 전까지 친구들의 의심은 계속됐다. 스스로도 글에 소질이 없다고 겸손함을 보이지만, '순애보'는 아름다운 가사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걸작이다.

"가사를 쓰는 곳은 몇 군데 정해져 있어요. 한강변에 차를 세워놓고 메모를 해서 집에서 마무리를 거치죠. 그땐 늘 오래된 컴퓨터 앞에서 해요. 조금은 객관화된 틀에서 보는 게 좋더라고요"

다른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사를 만들어내는 이세준의 감성은 특별하다. 올해로 결혼 6년차에 접어든 그는 매년 결혼기념일에 신혼여행지였던 몰디브를 다시 방문한다. 그곳에서 여유를 즐기며 가사 작업을 하기도 한다.

올 1월에도 몰디브에 다녀온 그는 우연히 만난 거북이를 보고 불현듯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거북이를 보기 위해 쫓아다니는 사람들과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의 거북이의 모습에서 '연예인'을 떠올린 것. 과거 길을 지나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는 감정들이 교차했지만 20년이 다 돼가는 지금은 어느새 습관처럼 그런 것들이 익숙해졌다.

"알아보시고 반갑다고 해주시는 것들이 일상이 되어버렸더라고요. 한 번 만난 것뿐인데 그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더 반가워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삼스럽게(웃음). 망각을 하고 살았던 거죠.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일인지를..."

생각은 음악으로도 이어졌다.

"사랑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고, 그동안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마음, 이별한 이들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노래를 만드는 게 저의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아주 사랑 이야기를 내려놓는 건 아니지만, 제가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면서 공감을 얻고 그런 것들에 대해 나눠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20년을 향해가는 길에 완성한 첫 솔로 음반으로 또 다른 동력을 갖게 된 이세준. 하던 만큼만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고, 새로운 것을 하고 꾸준히 연습하며 끊임없이 발전시켜야만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마음먹은 일들을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은 이세준의 다음 행보가 벌써 기대된다. 김하진 이슈팀기자 /hajin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