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청년일자리 회복방안’을 통해 2030년까지 청년 일자리를 30만개 이상 만들겠다고 밝혔다. 갈수록 심화되는 청년 취업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일률적인 정년연장 요구가 거세다. 청년의 일자리를 늘리면서 기성세대의 퇴직 시점은 늦추겠다는 두 정책은,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에서 양립하기 어렵다.
우리 노동시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 연공성과 고용 경직성이 결합돼 있다. 근속연수에 비례해 임금이 오르는 구조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고연차 직원의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지속적으로 커진다. 게다가 한번 채용한 근로자는 성과가 낮더라도 구조조정이 어려워, 법정 정년이 늘어나면 그만큼 신규채용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정년연장에 따른 기업의 추가 비용이 청년 90만명을 채용할 수 있는 규모에 달한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청년고용을 둘러싼 현실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청년 취업자 수는 2022년 11월 이후 수십 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는 20~30대 ‘쉬었음’ 인구는 70만 명을 넘어섰다. 청년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를 웃돌고, 체감실업률은 16%에 이른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도 11.2개월로, 사실상 1년에 달한다.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에서 일률적인 정년연장은 기업의 활력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뚜렷한 역할 없이 창가 자리를 지키며 2000만엔 이상의 고연봉을 받는 고령 근로자를 꼬집어 ‘윈도우2000(창가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임금과 생산성의 괴리가 커지면 조직의 역동성이 저하되고, 젊은 구성원의 성장 의욕도 위축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계는 정년연장의 즉각적인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 개편에는 반대한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정년제 운용 비율은 23% 수준에 그치지만, 유노조, 대기업의 경우 95%가 넘는다. 임금체계 개편이 빠진 정년연장이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이중구조를 더욱 심화시키고, 이들의 기득권만 옹호하는 장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영계 역시 고령자의 계속고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방식이 일률적인 정년연장이어서는 안 된다. 기업 여건과 직무 특성에 맞춰 ‘퇴직 후 재고용’ 같은 유연한 계속고용 방식을 활용해 노동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시급하며, 이를 뒷받침할 취업규칙 변경 절차 완화 등의 제도 개선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유연성이 확보돼야 기업은 고령 인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도 청년 채용 여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내어줄 때 사회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고령자 고용 정책은 기존 일자리를 오래 유지하는 제도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득권의 책임 있는 양보와 과감한 제도 개혁이 필수다. 청년에게는 일자리의 문을 넓혀주고 고령자의 경험과 숙련은 계속 활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대가 공존하며 우리 경제가 성장하는 길이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kwate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