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을 마주하면 마음이 절로 풍성해진다. 그러나 그 들녘 앞에 선 농업인은 표정도, 마음도 그리 가볍지 않다. 올해 거둔 것이 온전히 소득으로 이어질지, 이상기후와 병해충을 견뎌내고 굳세게 자란 작물이 수확 이후에도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사고 없이 무사히 수확해 1년 농사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을지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서다. ‘풍년’이라는 말의 안도감과 현장에서 느끼는 긴장감의 행간에서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풍년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수확량이 많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풍년이라 불렀다. 하지만 오늘의 농업 현장은 다르다. 생산비는 오르고 기후는 예측을 벗어나며, 일손은 갈수록 부족해지고, 수확 이후의 품질과 유통 과정까지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많이 거둔 만큼 반드시 농가의 더 나은 살림을 보장한다고 할 수도 없다. 안전하게 거두고 좋은 품질을 유지하며 제값을 받을 때 비로소 진짜 풍년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농촌진흥청은 농업기술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정밀한 생육·병해충 예찰과 조기경보 체계로 이상기후와 병해충의 피해를 줄이고, 기후 적응형 품종을 현장에 보급함으로써 재해에도 흔들림 없는 농업 기반을 다진다. 밭 농업 기계화율을 높이고 착용형 근력 보조 장치와 같은 농작업 안전·편이 장비를 확산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농촌 현장에서 농업인의 몸과 시간을 지킨다. 수확이 끝난 뒤에도 할 일은 남는다. 예냉·저장·선별 등 수확 후 관리 기술은 애써 거둔 결실이 유통 과정의 손실 없이 소비자의 밥상까지 온전히 이어지도록 뒷받침한다. 생산부터 수확, 저장과 유통까지 전 과정이 오롯이 연결될 때 비로소 농업기술의 성과도 완성된다.

무엇보다 이 변화의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AI 기술은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도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인이 언제 방제하고 언제 수확해야 할지, 어떤 품종을 선택하고 어떻게 경영을 개선해야 할지 합리적인 판단을 돕는 조력자에 가깝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 농업과 스마트 기술이 현장에 스며들수록, 농업인의 오랜 경험에 과학의 눈이 더해져 불확실성은 줄고 결실의 확실성은 커진다. 결국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좋은 기술도 연구실 안에만 머물러서는 의미가 없다. 농촌진흥청은 현장 실증과 환류 체계를 강화해 연구와 보급이 따로 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농업인의 목소리를 기술 개발의 출발점으로 삼고, 개발된 기술이 다시 현장의 평가를 거쳐 보완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이 논문과 보고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농업인의 손끝에서 실질적인 변화로 확인될 때, 비로소 기술은 완성된다.

추석을 앞두고 마주하는 이 가을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거두어야 할 진짜 풍년은 무엇인가. 그것은 창고에 쌓인 수확량이 아니라, 기후와 재해를 이겨내고 안전하게 거둔 작물이 품질을 지킨 채 농업인의 통장에 정당한 소득으로 남는 것이다. 나아가 그렇게 지켜진 결실이 국민의 밥상에도 안심하고 오르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앞으로도 생산의 현장에서 소비의 식탁까지, 농업기술이 그 전 과정을 든든히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김상경 농촌진흥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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