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학 연구팀 “2005~2019년 하루 발화량 28% 감소”

“문자·e메일·AI와 소통 쉬워질수록 역설적으로 덜 연결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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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해마다 말을 덜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마트폰과 문자메시지, 재택근무 등으로 입을 열지 않고도 일상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변화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침묵의 확산’이 단순한 사회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뇌와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근 미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른바 ‘Z세대 무표정(Gen Z stare)’을 풍자한 밈이 유행하고 있다. 손님이 카페에서 주문을 하려 하면 Z세대 직원이 별다른 말 없이 멍한 표정을 짓거나 안내판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식이다. 손님이 재차 질문해도 짧은 손짓이나 눈짓으로만 반응한다.

이런 밈이 공감을 얻는 배경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말을 덜 하고 있다는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7월 학술지 ‘퍼스펙티브스 온 사이콜로지컬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에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2000명 이상을 분석한 결과, 사람들의 하루 발화량은 해마다 약 300단어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하루 2~3분가량이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4년간 발화량은 28% 감소했다. 특히 25세 미만 젊은 층에서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연구를 이끈 발레리아 파이퍼 미주리대 캔자스시티캠퍼스 심리학·상담학과 조교수는 당초 성별에 따른 언어 사용 차이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이 같은 흐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본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점점 말을 덜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14년 전체 기간을 분석하면서 감소 폭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말하기는 여러 소통 방식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물건을 사고, 길을 묻고, 낯선 사람과 만나고, 함께 일하고, 관계를 유지하려면 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상의 많은 영역에서 말하기가 점점 ‘선택사항’으로 바뀌고 있다.

과학계는 오래전부터 언어 능력의 변화를 뇌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로 봐왔다. 치매를 비롯한 여러 신경계 질환에서 단어를 떠올리거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언어 장애가 흔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대체로 ‘뇌에 변화가 생기면 언어에도 문제가 나타난다’는 방향으로 관계를 이해해왔다. 하지만 반대로 말을 덜 하는 것이 뇌 활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말하기 자체가 상당히 복잡한 인지 활동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문장 하나를 말할 때도 뇌는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 순서를 구성하고, 발성에 필요한 근육을 움직이는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을 해석하고 다음에 할 말을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좌뇌의 브로카 영역(대뇌 좌반구 전두엽 하부에 위치하며 언어 생성과 발음을 담당하는 핵심 부위)을 비롯한 여러 뇌 부위가 관여한다. 대화를 반복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인지 자극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WP는 사람들이 단순히 말을 덜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 자체도 줄고 있다고 짚었다. 수십년간의 연구에서는 사회적 관계와 인지적 자극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반면 사회적 고립은 부정적인 결과와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서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을 통해 미국의 시민사회 참여 감소를 분석한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의 발화량 감소를 오래전부터 진행돼온 ‘대면 관계의 쇠퇴’와 연결했다.

퍼트넘 교수는 미국인들이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수십년 전인 1960년대부터 이미 동호회와 교회, 지역 모임 등 공동체 활동에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텔레비전 보급 이후 시작된 이런 흐름을 디지털 기술이 더욱 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흐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며 “이 추세를 되돌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면 접촉 감소의 부작용은 주로 외로움과 양극화, 공동체 약화, 인간관계 감소 등 사회적 측면에서 논의돼왔다.

하지만 대화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인지 활동이라면, 말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캘 뉴포트 조지타운대 교수는 사람들이 대면 대화나 음성 소통을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끼면서 점점 더 이를 피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바로 그 ‘어려움’이 관계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뉴포트 교수는 “우리의 사회적 뇌는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주의를 들이는 것을 중요한 관계의 신호로 받아들인다”며 “사회적 관계 맺기를 더 쉽고 간편하게 만들수록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서로 덜 연결돼 있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Z세대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많은 젊은 층이 코로나19 기간 원격 수업을 받으면서 또래와 직접 만나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 경험을 충분히 쌓지 못했다는 것이다.

파이퍼 교수의 연구는 참가자들이 며칠 동안 녹음 장치를 지닌 채 일상생활을 하면서 수집한 22개 연구의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다. 파이퍼 교수는 연구 결과를 확인한 이후 자신이 하루에 얼마나 말을 하는지, 대화가 문자메시지로 대체될 때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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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목하는 것은 문자나 이메일 같은 비동기식 소통과 실시간 대화의 차이다. 실시간 대화에서는 상대방이 한 말을 기억하면서 답을 생각하고, 동시에 상대방의 다음 말을 들어야 한다. 반면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은 답변을 천천히 생각하고 수정할 수 있으며 이전 대화 내용도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만큼 기억력과 주의력을 동시에 활용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드는 셈이다.

파이퍼 교수는 전체 발화량 감소가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의 대화가 줄어든 결과라기보다는 낯선 사람과 주고받던 짧고 일상적인 대화가 사라진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햄버거는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길은 구글에 물으면 된다. 특정 영화에 나온 배우가 누구인지 궁금하면 인공지능(AI)이 답해준다.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과거라면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아야 했던 순간 하나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파이퍼 교수는 이런 사소한 대화가 생각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짧은 대화와 우연한 교류를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사회적·인지적 능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며 “이런 작은 행동들이 서로 다시 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