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티(Fidelity)의 전설적인 포트폴리오 매니저 조지 반더헤이든(George Vanderheiden)은 닷컴 버블(dot-com bubble)의 광기를 걱정해 1990년대 말부터 미리 기술주 비중을 줄였다. 그런데 포트폴리오 재평 후 기술주 상승의 수혜를 보지 못한 그의 펀드 성과에 불만이 높아졌고 고객의 항의와 경영진의 압박이 커진다. 반더헤이든은 결국 2000년 2월 55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한다. 그가 떠난 지 불과 한 달 뒤인 2000년 3월 말부터 닷컴 버블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반더헤이든의 포트폴리오는 이때부터 빛을 발하게 된다.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장관과 케빈 워시(Kevin Warsh)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후원자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투자의 전설 스탠리 드러캔밀러(Stanley Druckenmiller). 그 역시 닷컴 버블로 곤혹을 치렀다. 일찌감치 기술주에 투자해 상당한 수익을 실현했지만 계속 오르는 주가를 참지 못하고 고점에 다시 올라탔다가 버블 붕괴의 직격탄을 맞았다. 드러캔밀러는 은퇴 대신 개인회사인 듀케인캐피탈(Duquesne Capital)로 옮겨 쇼트(short) 포지션으로 손실을 만회한다. 덕분에 드러캔밀러는 단 한 해도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지 않는 기록을 오늘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이익은 사람의 지혜를 흐리게 한다(利令智昏)“

사기(史記) 평원군 열전(平原君 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전설적인 투자자도 이익 앞에서 지혜가 흐려졌다. 시장은 절망도 안겨주지만 새로운 기회 역시 열어준다. 살아만 있으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틀리기 쉬운 미래 예측 보다 현실에 잘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폭락은 시장다반사…원인 분석부터

지난 8일 코스피가 8% 넘게 급락했다. 불과 1주일 전 9000 코앞까지 갔는데 7400선까지 미끄러졌다. 급등락은 ‘시장다반사’다. 8% 넘는 폭락도 역사에 아주 없지는 않다. 코스피 폭락과 반등의 역사를 보자.

√ 닷컴 버블 붕괴: 2000년 4월 17일 -11.63%, 1년 만에 전고점 90% 수준까지 반등.

√ 9・11 테러: 2001년 9월 12일 -12.02%. 석달 만에 연중 최고치 반등.

√ 글로벌 금융위기: 2008년 10월 16일 -9.44%, 10월24일 -10.57%. 27개월 후 전고점 경신

√ 코로나 팬데믹: 2020년 3월 19일 -8.39%. 5개월 만에 전고점 회복.

√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 2024년 8월 5일 -8.77%. 8월 6일 3.3% 반등.

√ 이란・중동전쟁 발발: 2026년 3월 4일 -12.06%. 3월 5일 9.63% 반등.

폭락의 원인은 달랐지만 시장은 결국 회복의 길을 찾았다. 지금 봐야 할 것은 낙폭 자체가 아니라 원인이다. 이번 급락이 수급 사고인지, 이익의 균열인지다. 6월 8일의 폭락 원인을 몇 가지로 압축하면 이 정도다.

√ 전력 등 인프라 미비로 AI 데이터센터 건설 차질. AI 반도체 실적 둔화(peak out) 우려

√ 회사채 발행도 모자라 유상증자까지 해야 하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 투자 여력 의심

√ 주가 급등에 따른 포트폴리오 내 반도체 비중 축소 필요성. 달러 강세로 인한 환차손 우려

√ 스페이스X 등 초대형 상장과 빅테크 유상증자에 따른 유동성 블랙홀 효과

√ 선물옵션 동시만기일에 따른 레버리지 관련 파생상품 롤오버(rollover) 리스크 및 반대매매

앞의 세 가지는 우려 또는 의심이다. 현실이 된다면 강도에 따라 위기급 구조 문제가 될 수 있다.

반도체 수요가 지연되거나 위축된다면 내달 초 나올 2분기 실적발표와 추후 실적 가이던스(guidance)에서 단초가 잡힐 것이다.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의 투자 여력에 대한 의심도 역시 2분기 실적에서 증거를 찾을 만하다. 반도체 수요가 지연된다면 이들의 투자 여력에는 오히려 여유가 생길 수도 있다. 주가 급등에 따른 부담은 주가가 폭락하면 오히려 줄어든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전력과 송배전망(grid), 주민 반발 등으로 인한 AI 인프라 병목(bottleneck)이다. AI는 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먹는다. 전기가 부족하면 송배전망을 깔아야 한다. 송배전망이 부족하면 발전소와 에너지저장장치, 냉각설비, 부지 확보 문제가 뒤따른다.

지난 1월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의 조사결과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에서 AI 관련 투자가 기여하는 정도가 무려 38%에 달했다. 미국의 AI 투자에 문제가 발생하면 공급망으로 연결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머지 둘은 수급 요인이다.

스페이스X의 공모금액은 860억 달러, 알파벳의 유상증자는 850억 달러다. 오픈AI와 앤트로픽도 올해 기업공개(IPO)로 각각 600억 달러, 500억 달러를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의 유동성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미국의 가계순자산은 184조 달러, 가계 주식 보유액은 68조 달러에 달한다. 언급한 4개 기업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투자하고 싶어하는 곳들이란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이미 최근 15개월 동안 사전공모(pre-IPO)로 각각 1600억 달러, 1100억 달러를 투자 받았다. 수천억 달러가 비상장 회사로 투자되는 기간에도 미국 증시는 AI 기술주 랠리를 계속 이어갔다. 어차피 극단적인 쏠림으로 움직이는 시장이다. 스페이스X나 오픈AI, 앤트로픽 등이 상장 후 양호한 주가 흐름을 보인다면 유동성 블랙홀 우려는 커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급락, 수급 원인 크지만…확인해야 할 것들

가장 유력한 폭락의 주범은 파생상품과 차입 투자다. 8일 한국 증시 낙폭이 유난히 컸던 점에서 확인된다.

KODEX레버리지에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 종목으로도 레버리지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품이 허용되면서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변동성은 코스피의 변동성이다. 오는 11일 선물옵션 동시만기일에 레버리지와 관련된 파생상품이 어떤 방아쇠 효과(trigger)를 낼 지가 관건이다. 파생상품으로 주가가 일정 수준 아래로 밀리면 빚을 내 투자한 계좌에서 반대매매가 쏟아지고, 그 결과 다시 증시가 하락하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일단 소나기라면 가장 먼저 지나갈 것은 이 수급 문제다. 내주가 되면 상당 부분 소화될 가능성이 크다. 스페이스X 역시 매출의 100배에 달하는 밸류에이션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상장 후 주가 흐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기술주 전반의 과열 우려도 함께 식을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수급이 아니다. 우려와 의심들이다. 반도체 이익 전망이 달라지는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투자 계획이 흔들리는지, 전력과 송배전망, 데이터센터 부지 확보를 둘러싼 병목이 심화되는지를 봐야 한다. 특히 병목은 이번 논쟁의 핵심이다. 병목이 투자를 멈추게 하면 피크아웃이다. 반대로 병목을 해결하기 위한 더 큰 투자와 정책이 뒤따른다면 슈퍼사이클이다.

현재 글로벌 경제가 단순한 기술 붐을 넘어 AI, 신재생에너지, 방위(안보), 제조업 재편이 맞물린 거대한 구조적 전환기에 진입했다는 데는 동의하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장기 투자 사이클이 진행되면 기업들의 이익이 급증하고 생산 효율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어려운 매매…지금 팔면 얼마에 살 수 있을까

코스피 1만과 S&P500 8000을 향한 기대 역시 여기서 출발한다. AI와 신재생에너지, 방위산업, 제조업 재편이 맞물린 거대한 투자 사이클이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시장이 두려워하는 전력 부족과 인프라 병목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다음 투자처를 알려주는 신호일 수도 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하원 전부와 상원 3분의 1, 그리고 39개 주의 주지사를 새로 뽑는다. 이미 AI 인프라는 미국 정치의 핵심 이슈가 됐다. 주민들의 전기요금 부담과 고용 불안을 최소화하면서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를 확대하는 해법이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하면 약세장이다. 10%대면 조정장이다. 단기선(20일 이동평균선)은 깨졌지만, 중기선(60일)은 아직 지키고 있다. 기술적 분석은 통계이고 그 통계는 투자주체들의 집단적 반응을 기반으로 한다. 이 관점으로 보면 아직 추세는 윗쪽이다. 드러켄밀러도 자신이 판 가격 보다 훨씬 위에서 다시 샀다가 낭패를 봤다.

지나친 낙관은 위험을 간과하게 만든다. 지금은 낙관이 큰 만큼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장이 급락했다고 당황할 이유는 없다. 낙폭보다 원인을 봐야 하고, 공포보다 그 공포의 유효기간을 따져야 한다.

“사물은 반드시 이르는 곳이 있고, 일에는 본래 그렇게 되는 이유가 있다(物有必至 事有固然)”

사기 맹상군(孟嘗君) 열전에서 책사 풍환(馮驩)이 교토삼굴(狡兎三窟)을 가르치며 한 말이다.

AI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은 결국 어느 곳에 다다를 것이다. 문제는 그 길이 곧고 평탄하지 않다는 점이다. 버블과 폭락, 병목과 투자, 공포와 탐욕이 그 길 위에 함께 있다. 급락했다고 경거망동할 이유는 없다.

*챗GPT를 활용한 이미지 입니다.
*챗GPT를 활용한 이미지 입니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