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회장은 1959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교까지 다니다 서울로 올라왔다.

금수산(1,016m) 자락에서 자라난 박 회장은 한마디로 ‘촌놈’이었다. 자연과 함께 자랐다. 그런데 자연을 보고 듣기만 한 게 아니라 작은 사물과 소리를 다른 곳과 연결시키려는 생각을가지게 됐다. 관찰력도 대단해 자연과 그 소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녹여낼 수 있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서 드라마 음악을 생각했다. 뻐꾸기는 나무의 꼭대기에만 앉는다는 걸 알았다. 그 울음소리는 작지만 분명했다. 꿩은 눈이 밝다. 사슴은 쓸개가 없다. 그런 사슴이 정신 없이 뛰어가다 딱 뒤를 돌아보는게 “내가 왜 여기 왔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드라마 제작이란 많은 얼개가 얽혀지는 작업이다. 박 회장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이 같은 자연과 동물을 드라마속에 연결시킨 게 드라마제작 현장에서 인정받는 큰 계기가 됐다. 그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도시에서 적응하기 쉬워도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 시골에 가면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단양에서 서울로 올라온 박 회장은 숭전대 철학과에 잠깐 다니다 하사관으로 군에 갔다 왔다. 제대후 서울예술전문대학(현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를 다시 들어가 졸업했다.

박 회장은 기자와 동갑이다. 당시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예전 연극과에 가는 사람은 특이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가고싶어하지만 당시는 평범한 사람들은 입학할 꿈조차 꾸기 어려웠던 학교다.

“중고 시절부터 방송에 관심이 있었다. MBC ‘수사반장’을 동네 점방에서 봤는데 너무 재미 있었다. 잠이 안오더라. 저걸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나중에 방송국과 외주사에 와서는 최불암 선생님에게 전화해 업무를 이야기 하는 사이가 됐다.”

박 회장은 드라마 프로듀서로서 일하면서 현장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이는 국회의원 시절까지 이어졌다. 국정감사도 문화는 현장에서 하길 바랬다. 오지에 있는 학교, 지방에 있는 문화현장에서 국정감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문화는 현장에 질문과 해답이 모두 존재한다는 게 박 회장의 지론이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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