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사고를 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인이 지금 간다고 한들 미국에서 쉽사리 만나주려 하겠느냐.”
미국을 방문하고 지난 20일 귀국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빈손 방미’라는 비판에 대해 한 말이다. 장 대표는 미국에서 누구를 만났고 어떤 말을 듣고 왔는지는 보안 사항이라며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대목에서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방미와 비교된다.
2002년 1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는 미국을 방문한 바 있는데, 그해 6월 13일에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었다. 물론 지금처럼 지방선거를 50일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의 방미는 아니었다. 당시 이 총재는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미국의 핵심 인사들을 만났다.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과도 면담했다.
그런데 장 대표가 미국에서 만난 인물 중 이 같은 거물급 인사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장 대표는 미 국무부 차관보를 만났다고는 하지만, 공개된 사진에는 차관보의 뒤통수만 나와 누구를 만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미 국무부 차관보는 여러 명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가 미국을 방문해 누구를 만났는지, 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가 ‘보안’으로 분류된 경우는 필자의 기억으로는 전례가 없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장 대표가 한미 간 핫라인을 구축했다고 주장해도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런 ‘초유의 상황’ 외에도 장 대표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장 대표가 귀국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부산 북구갑에 출마한 한동훈 전 대표를 돕겠다는 의사를 밝힌 진종오 의원에 대해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 역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난 20일 발표된 에너지경제신문 의뢰 리얼미터의 4월 3주 차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47.8%에서 56.1%로 상승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29.7%에서 24.5%로 하락했다.(16~17일 만 18세 이상 1001명 대상 무선 ARS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일반적으로 선거는 누가 중도층 표 5%p 정도를 더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한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중도층에서 양당 간 지지율 격차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도 유권자에게 가장 소구력이 있는 정치인인 한 전 대표를 돕겠다고 나선 의원에 대해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하니 이해 불가다. 이러한 행위는 선거 승패보다 한 전 대표에 대한 견제를 더 중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이와 같은 장 대표의 행보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러니 장 대표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출마자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오세훈 시장이나, 부산시장 후보인 박형준 시장이 지역 혹은 자체 선대위를 꾸리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탈(脫)동혁’을 자초하고 있는 장 대표가 지금 어떻게 상황 판단을 하고 있고,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주목되는 요즘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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