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바람이 불어오던 지난 4월, 지브리 스타일로 SNS를 꾸미는 이른바 ‘지브리 열풍’도 불어왔다. 몽환적인 색감으로 가족, 친구와의 추억을 화사하게 꾸미는 것은 분명 낭만을 자극하는 유쾌한 일이었다.
이 화사한 유행은 몇 가지 회색빛 질문도 남겼다. 먼저 제기된 것은 저작권의 법률적 회색지대(gray area)였다. 즉, 원작자의 화풍을 학습, 모방해 생성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인지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회색빛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표정, 손동작, 머리카락 하나하나에 정성들인 인간 고유의 예술 활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래픽 처리에 소요되는 전력소모와 수자원 사용 등 환경문제 또한 회색빛을 더한다.
과학과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 반면 사회적, 제도적 대응은 상대적으로 더디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단시간에 획기적 생산량 증대와 시장 활성화를 견인했지만, 그 이면에는 회색빛 그림자도 드리워졌다. 아동과 여성의 노동 문제, 빈곤과 불평등의 악화, 그리고 ‘스모그’라는 단어가 바로 그 시기에 생겨났을 정도의 환경오염도 따랐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초기에는 인식조차 희미했으며, 사회적 인지와 제도적 대응은 한참 후에야 뒤따랐다. 과학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새로운 문화와 산업을 열기도 하지만, 뒤이어 정체성 혼란, 권리 침해, 규제 공백 등 사회적 긴장도 초래한다.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옳을까? 2023년, AI가 가져올 위협을 우려해 AI기업 CEO들과 전문가들이 “인공지능 개발을 6개월간 중지”하자고 했던 주장처럼 속도를 늦추면 될까? 회의적이다. MS 창업자 빌 게이츠 역시 ‘과연 누가 멈추도록 할 것이며, 누가 멈출 것인지’라는 물음을 던지며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회색빛의 문제는 ‘속도’를 늦추는게 아니라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
AI시대, 인문사회 분야의 치유와 처방은 성장 및 성숙의 필요조건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방향을 조율하는 학문, 바로 인문사회에 주목해야 한다. 산업혁명기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찰리 채플린은 영화 ‘모던타임즈’를 통해 산업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성 상실을 성찰하게 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의 AI입법 과정에는 철학자, 정치학자 등이 참여해 법률과 기술의 회색지대를 윤리의 빛으로 채우며 ‘인간중심(human-centric) AI’라는 개념의 철학적 기반을 제시했다. 이렇듯 인문과 예술은 기술을 인간답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고 자율성과 존엄에 대한 성찰을 여는 ‘치유’의 학문이다. 사회과학은 과학기술이 살피지 못한 사회적 긴장을 진단하고, 수용과 적응의 ‘처방’을 제공한다.
오늘날 AI기술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국내에서도 AI개발에 집중하는 만큼 과학 전반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그 형태가 지금은 흐릿해도 드러날 것은 분명한 회색빛 영역에의 대응 또한 필수다. 규제와 진흥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고, 사회적인 수용과 적응이 요구된다.
AI시대에 적합한 방향 설정(관찰, 성찰, 통찰)도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저변과 토대가 강화되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인문사회의 중요성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인식과 지원은 단지 ‘AI시대에도’ 필요한 것이 아니다. ‘AI시대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더 강조되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요구되는 경쟁력, 인문사회 분야는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다.
김면중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총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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