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말바꾼 관세 불확실성 증폭
美 주식·달러·국채 ‘트리플 약세’
“신뢰 잃었다”…미국 탈퇴 ‘아멕시트’ 신조어까지
美 소비자는 ‘원가폭등·가격인상’ 공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9/rcv.YNA.20250427.PAP20250427245901009_P1.jpg)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으로 미국 경제가 역풍을 맞고 있다.
오는 2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을 맞지만 미국 주식시장은 1974년 이후 51년 만에 최악의 ‘100일 성적표’를 받았다. 미국 증시 대표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지난주 반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약 8% 하락했다. 이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사임하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1974년 이후 51년 만에 최악의 성적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증시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와 국채 가격도 하락하며 ‘트리플 약세’를 보이다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미국 소비자들은 관세에 따른 가격인상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장난감, 저가 의류 등 소비재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에 미국인들은 가격이 오르기 전 사재기에 나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 미국 성장률이 1% 미만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는 작년 2.8% ‘나홀로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 경제가 둔화하는 것으로 세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벼랑 끝 몰린 美금융시장…‘아멕시트(AMEXIT)’ 신조어 등장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모든 무역 상대국에 고강도 관세 정책을 펼치면서 글로벌 증시는 크게 요동치고 있다.
시장에서는 ‘아멕시트(AMEXIT)’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아멕시트는 미국이 기존에 주도하던 국제 경제 질서에서 스스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미국(America)과 탈퇴(exit)를 합해 만든 용어로, 2012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논의가 본격화할 때 탄생한 ‘브렉시트(Brexit)’와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1974년 이후 51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당시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주면 미국인들에게 ‘전례 없는 호황’이 있을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실제로는 주식시장이 투자자들의 기대와는 멀리 가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2일 100년 만에 가장 높다는 상호관세를 발표한 후 S&P500지수는 이틀간 10% 이상 하락했다. 일주일 후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관세를 90일 동안 유예하자 주가가 급등했다. 존스트레이딩의 30년 경력 거시 전략가인 데이브 루츠는 “시장이 연일 요동쳤다”고 지적했다.
미국 금융시장은 주식·국채·달러가 동시에 매도되는 비정상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식이 하락하면 안전자산인 미 국채와 달러는 자금이 몰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러가치 추락과 동시에 장기 국채금리마저 급등(국채가격 하락)하고 있다. 미 국채 30년물은 2023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지수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 들어 지금까지 8%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글로벌 자금이 미국을 더 이상 안전한 투자처로 보지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세계금평의회(WGC)의 존 리드 시장 전략가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 즉 경제와 주요 자산인 미국 달러와 국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뱅가드는 올해 미국 성장률을 1% 미만으로 예측했다. 202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뱅가드의 레베카 벤터 선임 채권상품 매니저는 “성장률이 낮은 것은 미국 재정 적자에 좋은 징조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美소비자들은 ‘한숨’…“물가 오르니 너무 걱정”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메드포드의 한 식료품점에 시리얼들이 진열돼 있다.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9/news-p.v1.20250425.f1b4cead4b6e417eb745a0b92d0c2f37_P1.jpg)
관세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경제적 불안에 직면했다. 상품 가격 인상까지 떠안게 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마이클 라이언 와이카토대학 회계 및 금융 경제학부 강사는 “관세가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향후 금리 상승과 국채에 압력을 가할 것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농산물 중 절반 이상은 수입품이다. 이 가운데 대중적으로 소비량이 큰 설탕, 커피, 코코아, 기타 열대 농산물의 비중은 약 15%다. 소고기 가격 상승도 예상된다. 근래 극심한 가뭄에 따른 목초지 감소로 미국 농장에서 사육·공급되는 소가 5년 연속 감소, 1951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호주·캐나다·멕시코·브라질·뉴질랜드에서 소고기를 수입하는 양이 크게 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정책이 과일과 채소, 설탕, 커피, 육류의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라며 “이미 하늘 높이 치솟은 미국의 식품 가격을 훨씬 더 올릴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대형 소매업체 대표들은 지난 21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여파로 ‘매장이 텅텅 빌 것’이라며 2주 안에 공급망 혼란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했다. 미 CNBC는 적은 재고로 운영되는 장난감, 저가 의류 등 저가용품 매장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업계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마트의 존 데이비드 레이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달 초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투자자들과 만나 월마트의 상품 중 3분의 2가 미국에서 생산 혹은 조립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나머지는 대부분 중국 및 멕시코에서 조달한다. CNBC는 옷과 생활용품을 파는 타깃의 경우 대부분이 해외에서 생산하는 만큼 트럼프의 관세에 더욱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패션 소매업체 쉬인 매장 [AF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9/rcv.YNA.20250205.PAF20250205203401009_P1.jpg)
중국의 대형 온라인 유통 업체 쉬인도 미국 정부의 ‘소액 면세 제도’ 폐지를 앞두고 상품 가격을 대폭 올렸다. 키친타월의 경우 하루 만에 377% 폭등한 것을 비롯해 주요 항목별 가격 인상률이 35~50%에 달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쉬인이 의류에서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판매하는 상품 대부분을 지난 주말을 전후해 크게 인상했다면서 글로벌 무역전쟁이 미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美선 ‘불황 극복 노하우’ 유행에 Z세대가 조언 구하기도
미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에 대비해 ‘불황 극복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최근 틱톡, 인스타그램, 엑스(X·옛 트위터) 등 미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불황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한 게시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 출생)의 ‘절약 노하우’가 Z세대(1997~2012년 출생)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CNBC에 따르면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키키 러프(28)는 최근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밖에서 사먹던 음식을 집에 있는 재료로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지 직접 요리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는 과거 대공황이나 불황, 전쟁 시기에 출간된 요리책 레시피를 소개하는 동영상 가이드도 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직접 경험했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댈러스에 거주하는 틱톡가 이마니 스미스(29)는 지출을 줄이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외식을 줄이고 친구들과 구독 비밀번호를 공유하기로 했다. 미용실에 가는 대신 아마존에서 프레스온 네일을 구매한다. 값비싼 립밤이나 양초와 같은 소액 구매도 줄이기로 했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성인이었던 팔로워들에게 계획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가족 경제와 세대 간 경제를 연구하는 배브슨 칼리지의 메건 웨이 부교수는 “2000년대 후반에는 이웃들과 불황 노하우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면, 이젠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