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석 경희대 교수 ‘최인훈의 아시아’

“양도 사자도 아닌 제3의 길 모색”

민주주의 가치 중요…서로 존중해야

‘최인훈의 아시아’를 출간한 장문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최인훈의 아시아’를 출간한 장문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프랑스 혁명은 다만 한 가지 형태의 착취를 다른 형태의 착취로 바꾼 데 지나지 않지만, 우리들은 인간의 의한 인간의 착취에 바탕을 둔 사회를 인간의 연대성에 바탕을 둔 사회로 바꾸어 놓고 있는 중이다.”(최인훈, ‘화두’ 2)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한 번쯤 봤을 작가 최인훈은 대표작 ‘광장’을 비롯해 ‘회색인’, ‘화두’ 등의 작품에서 한국의 현실과 한국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장문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신간 ‘최인훈의 아시아’에서 최인훈의 질문을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하고, 그가 모색한 대안을 살폈다. 1960년 ‘광장’이 발표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그가 제기한 이념과 냉전, 선진국과 후진국, 민주주의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현재와 겹쳐 읽힌다.

지난 15일 경희대에서 만난 장 교수는 “최인훈은 20세기 한국인의 삶과 생각의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작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한국 너머로 나아갈 수 있는가 고민을 많이 했던 작가”라며 “여전히 그의 문학을 읽고 한국인이 누구인가, 한국인이자 세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최인훈의 소설처럼 자유롭게 얘기하지 못하고, 더 민주적인 삶을 고민한다는 내용이 고릿적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비상계엄이 발령되는 상황이 오면서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다. 장 교수는 “포고령에 들어가니 마니 했던 항목 중 야간 통행금지도 있었는데, 이는 최인훈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다룬 내용이다. 역사 속의 풍경들이 지금도 살아오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며 “억압적 체제 안에서도 평범한 시민들이 우애 있게 살아 가는 공동체,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최인훈 문학의 지향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광장’에서 이명준이 중립국을 선택한 것은 극단적 이념 모두에 거리를 둔 새로운 가능성의 모색이라 풀이된다. 적대와 대립을 넘어서 평화라는 대화 가능한 완충 지역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최인훈의 모색은 적대의 선들이 많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회색인’은 민족의 정체성을 탐구했다. 장 교수는 “최인훈에게 한국이란 자기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르지 못했던 나라였다. 나의 이름으로 나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아가면서 다른 나라와 소통하는 길, 공존의 세계 질서를 꿈꿨다”고 설명했다.

장문석 경희대 국문과 교수의 신간 ‘최인훈의 아시아’ 표지. [틈새의시간]
장문석 경희대 국문과 교수의 신간 ‘최인훈의 아시아’ 표지. [틈새의시간]

이 책은 한국과 세계 사이의 ‘아시아’란 보조선에 주목한다. 19~20세기 역사는 유럽 제국주의 중심으로 진행됐고 아시아는 식민지였다. 지배하는 나라들의 원리가 아니라 억압받던 사람들의 원리, 아시아란 이름으로 어떤 세계를 상상해야 할지 탐색한다. 아울러 유족과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 최인훈의 사진과 일화 등을 새롭게 수록하기도 했다.

최인훈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이항 대립에서 벗어나 ‘양’(후진국)도 아니면서 ‘사자’(선진국)도 아닌 균형에 머물며 다른 나라와 잘 살아갈 제3의 길을 질문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연대·공존하는 모습을 민주주의로 그렸다. “한국은 발전이 빠르게 진행돼 스스로도 변화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오히려 더 생각해 볼 문제”라는 진단이다.

지난해 ‘경희대 시국선언문’으로 주목받았던 장 교수는 탄핵 전보다 지금이 더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는 “대학 안에서도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경험을 받아들이면서 좋은 토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라는 가치, 생각이 다르더라도 존중하는 태도 같은 원칙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p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