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신작 소리드라마 ‘심청’

오페라 연출가 요나김 극본·연출

오는 8월 13~14일 전주서 초연

9월엔 3~6일 국립극장 해오름 공연

소리드라마 심청 오디션

소리드라마 ‘심청’_오디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두리둥 둥 둥 둥 둥 둥(중략) ‘심 낭자 물에 들라!’” (‘심청 물에 빠지는 대목’ 중)

성난 파도처럼 떠밀고, 거센 북소리처럼 몰아친다. 뱃사람들은 심청더러 지체 말고 인당수로 뛰어들라며 사지로 내몬다. 그저 ‘죽으라며’ 성화같이 재촉하니, 심청도 통곡한다. ‘불효여식 청이는 잊고 어서 눈을 뜨라’며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초마 자락 무릅쓰고 뱃전으로 우루루루루루. 만경창파 갈매기 격으로 떴다 물에 가 ‘풍!’”.

계면을 입은 소리꾼들의 음색에 저마다의 슬픔이 찾아든다. 공양미 300석에 팔려 가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 처참한 심경을 부여잡을 새도 없이 떠밀리는 심청의 마지막 인사가 오디션 참가자들의 긴장감에 뒤섞여 휘몰아친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심청’의 오디션 현장. 한 참가자는 오디션 이후 “힘겹게 마쳤다”며 “우리네 인생이 오디션의 연속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작 창극이 온다. 국립창극단 신작인 ‘심청’(8월 전주, 9월 서울).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오페라 연출가 요나김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2017년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가 선정하는 ‘올해의 연출가’, 2020년 독일의 권위 있는 예술상인 파우스트상 후보에 올랐고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로 호평받은 그의 첫 소리극 연출이다. 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 위원회가 공동 제작, 국립창극단 전 단원을 포함해 130여 명이 출연한다. 음악은 작곡가 최우정, 작창은 한승석이 맡았다.

이번 ‘심청’은 모든 통념을 깬다. 장르의 규정, 이야기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담론을 제시한다.

요나김 연출가는 “우리는 심청전이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심청은 한국적인 동시에 굉장히 세계 보편적인 인류사적 인물”이라며 “심청의 옷을 입고 있지만 ‘심청가’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제작 기간이 상당히 길다. 장장 2년의 인큐베이팅 기간을 거쳤다. 요나김 연출가는 ‘심청’의 새로운 이야기를 짜기 위해 길고 오랜 탐구의 시간을 거쳤고, 끊임없이 묻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극본과 연출 맡은 요나김 연출가 [연합]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극본과 연출 맡은 요나김 연출가 [연합]

그는 “심청가 판본을 비롯해 설화 심청, 어린이용 동화는 물론 영어로 번역한 버전까지 폭넓게 읽으며 극본을 써 내려갔다”고 귀띔했다. 대본은 ‘강산제’와 ‘동초제’ 판소리를 바탕으로 했다. 가사는 그대로 가져가되 그사이 공간에 재해석을 덧붙였다는 게 요나김 연출가의 설명이다.

‘심청가’는 이미 ‘연극 연출의 거장’ 손진책이 극본과 연출을 맡아 국립창극단에서 2018년, 2019년, 2023년 등 세 차례 무대에 올랐다. 강산제 심청가의 전체 사설 중 핵심만 추려 2시간으로 압축한 최근 작품은 소리에 집중해 ‘전통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줬다.

이번 심청은 기존의 모든 ‘심청가’를 뒤엎는다. 대다수의 작품이 심청을 ‘출천대효(出天大孝)’의 아이콘으로 삼았던 것과 달리 요나김의 ‘심청’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억압당한 이 땅의 모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

요나김 연출가는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와 엘렉트라, 독일 동화 등 눈먼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캐릭터는 전 세계 어디서나 있다”며 “심청의 기존 구조나 패턴과 닮은 이야기는 너무도 많아 인류는 원형으로 들어가면 통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희생하는 약자에 대한 사회의 니즈가 늘 있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작품에선 심청을 ‘희생을 강요당한 인물’로만 그리지 않는다. 다양한 오페라 무대를 통해 고전을 재해석하고 동시대 관점을 담아온 요나김 연출가는 이번 무대에서도 캐릭터의 재해석을 시도, 새로운 인물상을 그린다.

소리드라마 ‘심청’ 오디션 심사위원 요나김 연출가(왼쪽)와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국립극장 제공]
소리드라마 ‘심청’ 오디션 심사위원 요나김 연출가(왼쪽)와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국립극장 제공]

그는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 인물이라기보단 자신보다 약한 모든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놓을 수 사람,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내려놓지 않는 인물의 메타포라는 생각을 해봤다”고 말했다. 심 봉사 역시 “현실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권력의 최정점에 선 기득권층이자 가부장제”의 상징으로 봤다.

이들을 통해 ‘심청가’는 반목과 대립 대신 통합과 연대의 세계를 그린다. 요나김 연출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삐걱대면서도 어떻게든 서로를 도우며 굴러가는 것이 이 세계이지 않을까 싶었다”며 “‘심청가’는 단지 부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캐릭터로 해석하는 만큼 주인공 심청의 어깨가 무겁다. 오디션에선 국립창극단 단원과 일반 소리꾼이 더블 캐스팅된다. 무엇보다 오디션 참가자들은 “독일에서 활동한 오페라 연출가의 새로운 연출과 새로운 해석의 심청”이라는 점에서 지원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1차 심사 이후 2차 오디션에 참석한 6명의 어린 심청은 ‘후원 기도 대목’과 ‘심청 물에 빠지는 대목’을 지정곡으로 받아 소화했고 굿거리와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즉흥무를 선보였다. 요나김 연출가는 “소리의 움직임, 소리꾼만이 가진 공간을 제압하는 에너지와 표현력을 봤다”고 했다. 심사위원은 요나김 연출가를 비롯해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최우정 작곡가, 왕기석 명창 등이 맡았다.

소리드라마 ‘심청’ 오디션 [국립극장 제공]
소리드라마 ‘심청’ 오디션 [국립극장 제공]

참가자들에겐 쉽지 않은 오디션이었다. 특히 오디션 지정곡들이 모두 고난도 기술에 극상의 고음이 이어지는 곡이라 더 어려웠다. 한 참가자는 “오디션 지정곡 중 ‘후원에 단을 묻고’는 고음인 데다 통성으로 두껍게 뽑아내야 하기에 모두에게 쉽지 않았다”며 “기준 키가 E플랫(3옥타브)으로 정해져 있어 지원 과정부터 참가자들이 걸러지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심청가’는 요나김 연출가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무대 디자이너 헤르베르트 무라우어, 의상 디자이너 팔크 바우어, 영상 감독 벤야민 뤼트케, 무대 의상 어시스턴트 프랑크 쇤발트 등이 제작진으로 함께 한다.

팔크 바우어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의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름다운 한복의 표면만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대적인 옷을 입은 소녀가 한복을 입음으로써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심청은 지난 몇 년 새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창극 장르 중 하나지만, 이 작품은 모든 규정을 지우고 새로운 장르로 재탄생한다. 요나김 연출가는 “전 오랫동안 경계선 밖에 있던 사람이다. 오페라 장르의 경계,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어 지금은 문지방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며 “이 작품 역시 경계를 넘기를 바란다. 시대와 장소, 장르를 규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신작 ‘심청가’에 ‘창극’이 아닌 ‘소리 드라마’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판소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국적이든 성별이든 나이든 관계없이 2시간 동안 다른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바다에 빠져 뭔가를 느끼고 생각한 뒤 다시 나의 세계로 나오게 되길 바랍니다.” (요나김 연출가)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