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과 강원 등지를 휩쓴 초대형 산불로 수많은 국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28일까지 사상자가 60여명이 넘는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있었고, 잿더미로 변한 살림살이 앞에서 주민들은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다. 국가 비상상황에서 신속한 지원이 절실하지만, 피해 복구를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놓고 여야는 정치 공방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여야는 이번 산불을 계기로 중단됐던 추경 논의를 재개한다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에선 날 선 대립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예비비가 부족하니 추경을 통해 재난 대응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예산안에 재해대책비가 충분하고 당 자체 추경안에 국민안전예산이 포함됐다”고 맞서고 있다. 여당은 야당 삭감 예비비 복원 및 확충을, 야당은 즉각적인 정부 추경안 제출과 논의를 요구하며 산불 발생 일주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협의를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번 추경에 18조원 규모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 1인당 25만원 상당의 소비쿠폰을 지급해 얼어붙은 내수를 살리겠다는 것인데, 재난 피해 복구가 시급한 상황에서 ‘현금 살포’를 우선순위로 삼는 것은 국민 정서와 거리가 있다.

더 한심한 건 여야가 추경 정쟁을 벌이느라 얼어붙은 내수를 살릴 금쪽 같은 1분기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주요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27일엔 영국 리서치 회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CE)가 성장률을 기존 1.0%에서 0.9%로 낮췄다. 최근 바클리가 1.6%에서 1.4%, HSBC가 1.7%에서 1.4%,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2.0%에서 1.2%로 전망치를 낮춘 가운데 0%대가 나온 건 처음이다. ‘트럼프 발’ 자동차 관세와 상호관세 부과가 시행에 들어가면 더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CE가 보고서에서 “정치가 안정되더라도 경제가 어려울 듯하다”며 정부 지출 둔화 등을 이유로 꼽은 것은 뼈아프다. 각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관세 공세에 맞서 일찌감치 대규모 경기 부양책으로 맞서고 있는데 우리만 탄핵 정국에 여야 정쟁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다. 그 사이 내우외환이 겹겹이 쌓이고 있다. 우선 재난 복구는 지체될 수록 피해가 더 커지는 만큼 정책 우선에 두고 기존 예비비를 최대한 활용해 지원에 나서야 한다. 경기 부양 추경도 더 미뤄선 안된다. 한은이 20조원 정도의 추경이 적당하다고 봤는데 액수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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