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 30여년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직장인이 ‘내 집 마련’을 걱정하는 것이 서울 집값이다.
때문에 며칠 전 본지 보도로 밝혀진 서초구 반포자이 신고가 주인공이 우즈베키스탄인이라는 건 유독 씁쓸하다. 전용 244㎡를 74억원 신고가에 산 이가 40대 외국인이라니, 청년들의 현실을 비웃는 듯하다.
외국인의 서울 아파트 쇼핑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때는 한 몰타 국적인이 강남구의 효성청담 226㎡을 74억500만원에 매입했다. 2023년 용산구의 나인원한남을 120억원 최고가에 사들인 이도 말레이시아인이었다.
이렇듯 외국인 큰 손은 서울 아파트 값도 밀어 올리고 있다. 지난해 1~8월 중 외국인이 매수한 30억원 초과 주택 거래의 70%가 신고가를 새로 썼다.
초고가가 아니더라도 국내 부동산을 구매하는 외국인은 증가세다. 국토교통부의 ‘외국인 주택소유통계 주요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외국인이 소유한 주택 수는 9만5058호로 집계됐다. 해당 수치는 2022년 말 8만2512호에서 ▷2023년 상반기 8만7223호 ▷2023년 말 9만1453호를 기록하는 등 지속해서 증가 중이다.
무주택 청년 입장에선 기가 찰 일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선 외국인이 내국인보다 집을 살 때 규제 적용을 덜 받는다. 내국인은 깐깐한 대출 규제가 적용되고 그마저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상승 등 점차 강화될 예정이지만, 외국인은 자국 은행에서 대출을 쉽게 받는다. 2주택부터 ‘투기적 목적’의 주택구입으로 감안해 무거운 세금을 매기지만, 외국인 다주택 현황 파악이 안되니 취득세·양도소득세 규제도 피해간다. 게다가 최근의 원화 약세 기조는 외국인들에게 ‘집값 할인 효과’까지 제공하고 있다.
서울이 ‘세계적 도시’로 거듭나면서 외국인의 부동산 구입이 자연스런 수순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외국인이 주택 매수에 뛰어들면서 집값이 오른 나라들은 진작 외국인의 주택 매수 문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에선 외국인에겐 집값의 60%까지 취득세를 물린다. 호주는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4월부터 외국인의 기존 주택 매입을 2년 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스페인 정부 역시 비(非) 유럽연합(EU)의 외국인이 부동산 구매할 때 세금을 최고 100%까지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올 2월 서울의 상위20%(5분위) 아파트 값은 27억5169만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서울의 연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 소득의 88.3배다. 소득 하위 가구가 한 푼도 쓰지 않고 88년을 모아야 고가 주택 한 채를 산단 얘기다.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부동산 양극화는 갈 데까지 갔다. 청년의 박탈감도 말할 나위 없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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