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차에 들어섰다. 작년 9월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 전쟁의 사상자를 100만명이라고 추산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는 ‘금년 초까지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의 80퍼센트와 자포리자와 헤르손 지역의 75퍼센트를 점령했다’는 내용의 기고문이 실렸다.

러시아 점령 지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은 6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와 같은 인명 피해와 영토 손실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작년 10월 우크라이나 사회학 연구소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인의 38퍼센트는 휴전을 원했지만, 51퍼센트의 국민은 빼앗긴 영토를 되찾을 때까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휴전을 위한 회담에 나선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젤린스키 대통령은 안전보장 약속과 영토 회복 없는 휴전은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오늘도 우크라이나 땅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은 도대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전쟁은 인간의 생명 뿐 아니라 정신도 무너뜨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의 펠렐리우와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하여, 2010년 드라마 퍼시픽의 모델이 된 자서전을 쓴 유진 슬레지는 전쟁 트라우마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은 끔찍한 흔적을 안고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이처럼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피폐하게 할 수 있는 전쟁은 20세기 들어 범죄로 규정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 총리 글래드스톤은 전쟁을 ‘범죄’라고 했고,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안한 집단안보 원칙에 의하면 침략 전쟁은 국제법 위반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범 재판은 침략 전쟁의 법적 책임을 물었다. 그리고 1946년의 유엔 헌장은 침략 전쟁과 영토 획득을 위한 무력 사용을 금지했다. 이제 전쟁으로 영토를 획득한다는 수천년간 이어진 관행은 국제적 범죄 행위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해 전쟁의 파괴 이미지는 더욱 극명해졌고, 국제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 운동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여기서 평화 운동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만큼 길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전쟁이 파괴와 범죄라는 생각은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군사학자 마틴 반 크레펠드는 19세기까지 유럽 역사서들이 전쟁의 공포와 슬픔에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보다는 전쟁이 인간사의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며, 때로는 긍정적 현상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도 19세기 인간들에게 전쟁이란 개인과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며, 전쟁 자체는 명예로운 삶의 길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전쟁에는 이중적 이미지가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로렌스 프리드맨은 전쟁은 혼란과 불화이지만, 명예와 귀중한 것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전쟁을 파괴와 범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명예와 가치를 수호하는 방법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4년차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중적 이미지 중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일까. 이제 전쟁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서 인류사적인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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