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급식소, 한파에도 인파
귀마개 등 중무장한 수십명 식사
‘노인 성지’지만 저렴한 식당 줄어

“갈 곳도 마땅치 않고…. 밥 먹고 가려고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어.”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1.5도를 기록한 지난 4일 오전 10시께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문형석(73) 씨는 이렇게 말했다. 문씨는 노인 연금 30만원과 설에 자녀에게 받은 용돈 20만원, 총 50만원으로 한 달 생활비를 충당한다고 했다. 문씨는 매일 이곳 탑골공원으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같은 날 낮 12시에도 탑골공원 인근 건물들의 처마 끝부분에는 듬성듬성 고드름이 매달려 있을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체감온도 영하 18.7도(서울 기준)의 한파가 덮쳤지만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은 노인 수십명은 긴 줄을 만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무료급식소 왼쪽으로는 햇볕이 들었지만, 오른쪽은 그늘이었다. 두터운 외투와 모자·장갑으로 무장한 노인들은 그나마 추위가 덜한 양지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탑골공원 주변에서 무료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원각’(작은 사진)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퍼져 나왔다.
무료급식소의 점심 메뉴는 비빔밥과 시래기국. 급식소 안에 마련된 좌석은 25개 정도 됐지만, 빈자리는 없었다. 대부분은 패딩 모자를 덮어쓰고 귀마개를 쓴 채 식사를 했다.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비빔밥 재료는 받지 않고 밥과 국만 받아 후루룩 국에 밥을 말아서 삼키는 이도 보였다. 한 움큼 정도의 밥만 받아 오래 씹고 목으로 넘기는 사람도 있었다.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은 오른 물가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도 예전보다 녹록지 않다고 했다.

식사를 마친 윤모(76) 씨는 무료급식소 인근 무인 커피 자판기 앞에서 동전 300원을 넣고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가 식사를 잘했는지 묻자, 윤씨는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보였다. 그는 “하루 생활비 만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예전엔 이발도 하고 밥도 먹고 점심 한 끼에 3000원만 받는 곳도 많았는데 요즘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밥 사 먹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종로구 돈의동 쪽방에서 생활한다는 배모(65) 씨는 아침을 거른 채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평소 새벽 3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 가까이 걸어가면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브릿지센터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을 수 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나서지 못했고 했다. 그는 “의정부나 청주에서 여기까지 밥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다”며 “저렴한 식당은 점점 문을 닫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그의 말처럼 한때 탑골공원에서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식당인 ‘부자촌’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부자촌은 소주 한 컵에 1000원짜리 잔술을 팔던 곳으로 유명했다.
사회복지원각은 1993년부터 노인과 노숙인에게 점심을 제공한다. 365일 내내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20분까지 문을 연다.
이곳의 강소윤 총무는 “후원금이 자꾸 줄어든다. 비상계엄 이후로 더 상황이 힘들어졌다”며 “더운 날은 더워서 추운 날은 추워서 어르신들에게는 부담이 되는데 한 끼 식사라도 맛있게 하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도윤 기자
kimdoy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