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시라노’
기괴한 코 가진 다재다능 낭만주의자
“컴컴한 배우의 길 이정표 같은 작품”
![뮤지컬 ‘시라노’ 조형균 [RG컴퍼니, CJ ENM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3/news-p.v1.20250203.e028ec2188e34afd84fdb6bf36a37692_P1.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뭔가 괴상하고 요상한가. 왜 자꾸 코를 쳐다봐!” (뮤지컬 ‘시라노’ 중)
메타인지가 뛰어난 시대의 스타. ‘영웅의 등장’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코, 기이한 생김새에 사람들의 시선은 노상 한 곳으로 쏠린다. ‘외모 콤플렉스’로 일생을 시달렸지만, 위대한 시인이자 군인, 혁명가였다. ‘못생긴’ 외모는 ‘특별함’으로 승화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유려한 시구를 직조한다. 한없이 순수한 사랑을 품은 낭만주의자이자, 불의와 부정에 맞서는 정의의 아이콘. 무대 위의 조형균은 영락없이 시라노였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불합리에 굴복하지 않는 강강약약(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 사람을 일컫는 말)의 캐릭터이자 한 여자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었죠.”
5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시라노’(2월 23일까지ㆍ예술의전당)는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배경은 17세기 프랑스. 자유분방한 철학자이자, 풍자 작가였고 뛰어난 검술사였던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라주라크(1619~1656)의 삶을 담았다.
시라노 역을 맡은 조형균(41)은 이 작품을 통해 2020년 제4회한국뮤지컬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다시 서는 무대는 그에게 많은 고민을 던졌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했던 작품을 다시 할 땐 재연의 틀에 갇히게 될 때가 있다”며 “이번 시즌에선 많은 부분이 달라져 새로운 시로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조형균의 시라노가 특별한 것은 캐릭터와의 일체감 때문이다. 무대 위 그는 조형균을 지우고, 온전히 시라노로 존재한다. 연극 배우처럼 섬세하고 세밀하게 캐릭터를 표현하고, 단단하면서도 청아한 음색으로 시라노를 노래한다. 정작 그는 “나의 시라노가 어떤 강점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다만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형균 [이음엔터테인먼트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3/news-p.v1.20250203.2f71900f60f244408e04e96348ba13ed_P1.jpg)
2007년 ‘찰리 브라운’으로 데뷔한 그는 올해로 데뷔 19년차 뮤지컬 배우다. 대극장의 주요 작품에 주연 배우로 이름을 올리고 2017년엔 JTBC 남성사중창단을 만드는 경연 프로그램인 ‘팬텀싱어2’에 출연, 에덴 라인클랑으로 이름을 알렸다. ‘시라노’ 연기의 밑바탕에는 배우 조형균의 서사가 있었다.
“전 특출난 게 없는 사람이에요. 이미지도 그렇고, 캐릭터 배우로서도 그렇죠. 그렇다고 훤칠하게 잘생긴 사람도 아니고요. 지극히 평범하고 고유의 색이 없다는 것이 제겐 늘 스트레스이자 콤플렉스였어요.”
예전엔 키가 작은 것이 대극장에선 배우로서 한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깔창을 넣은 신발을 신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무릎이 많이 아팠다“며 웃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나답게 살자는 생각에 깔창은 모두 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에 와서 보면 평범하기에 다양한 작품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본다.
배우 조형균의 강점은 매작품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런 역할, 저런 역할을 다양하게 해오며 고집스럽게 강박증처럼 지켜온 것은 전 작품에서 보여준 모든 이미지를 삭제하려는 점”이라고 했다. 한 작품, 한 작품,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온전히 캐릭터를 체화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라노는 낭만주의 시대에 시와 검술이 능했던 인재이자 돈키호테처럼 죽음의 순간까지 자기만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며 “그런 인물에 어울리도록 말투와 캐릭터, 톤을 고민하고 대사 톤과 노래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연구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시적인 대사가 많지만, 단순히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화’ 해 한 줄 한 줄의 대사를 완성했다.
![뮤지컬 ‘시라노’ 조형균 [RG컴퍼니, CJ ENM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3/news-p.v1.20250203.d9bfa3e12337444ab6050f00f06a2d7e_P1.jpg)
조형규의 고민은 통했다. 17세기를 살다간 시라노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생생하다. ‘외모 콤플렉스’로 자신의 사랑도 표현하지 못하는 시라노는 조형균을 만나 매력적인 순정파이자,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영웅으로 거듭났다. 조형균은 “‘시라노’는 저마다 안고 있는 콤플렉스와 인간의 원초적 사랑, 사람이 살아가며 느끼는 본질적 감정을 다룬 우리의 이야기”라며 “천천히 가는 고전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배우로서 마음’을 다시금 돌아봤다.
앙상블로 시작해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올라온 조형균은 “끈질기게 버티다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다.
“배우는 늘 선택받는 사람이기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고민의 끝은 별 게 없더라고요. 특별히 뭔가를 한다고 해서 저만의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요. 오늘의 공연을 열심히 하면, 그게 나의 경쟁력이 될거라 생각했어요.”
‘시라노’가 그에게 더 특별한 것은 배우의 길에 확신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첫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상이라는 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기에 큰 의미를 두려고 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가 배우로서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이정표 같은 의미가 됐다”고 말했다.
“시라노가 죽기 직전 들려주는 대사를 특히 좋아해요. ‘오늘 밤 내가 저 달나라로 돌아갈 때 가져가야 할 단 한 가지. 티 한 점 없는, 부끄러움 한 점 없는 나의 영혼’이라는 대사예요. 이 대사가 암흑의 길을 걷는 배우의 인생과도 맞닿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시대이기에,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야 더 좋은 연기가 나오니까요. 전 느리게 가지만,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는 거북이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