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우리 증시는 상장 문턱이 낮아 신규 기업은 계속 흘러들었지만 부실기업은 제때 솎아내지 않아 증시 건전성과 신뢰도가 글로벌 증시와 견줘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실제로 코스닥시장 상장사 중 약 20%는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기업’이다. 무엇보다 해외 주요국에 비해 상장기업 수 대비 시가총액이 낮다. 지난해 미국 증시 시총은 9경968조원으로 국내 유가증권과 코스닥시장의 시총 2288조원보다 40배 가까이 크다. 하지만 미국의 상장사 수는 한국보다 불과 63.19% 많은 수준이다. 일본과 비교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일본 증시의 시총이 우리보다 4배 크고, 상장사 수는 59% 많다. 한국의 시장 규모 대비 상장사가 너무 많다 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지속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당국이 21일 IPO(기업공개)·상장폐지 제도 대수술을 단행한 배경이다.

개선안은 유명무실한 좀비기업 퇴출 제도를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시총 기준을 코스피 50억→500억원, 코스닥 40억→300억원으로 내년부터 2028년까지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높인다. 2028년부터는 코스피에서 시총 500억원 미만의 기업의 주식은 거래할 수 없다. 상장폐지 매출 기준도 시총처럼 높아진다. 코스피는 50억→300억원으로, 코스닥은 30억→100억원으로 올라간다. 단기간에 매출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2029년까지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상장 직후 주식을 바로 내다 파는 ‘IPO 단타’도 막는다.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기관투자가에 기관 공모주 물량 40% 이상을 배정하기로 했다.

개선안에 따른 시장 충격은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준으로 코스피는 62개사, 코스닥은 137개사를 시총이나 매출 기준 요건 미달로 퇴출할 수 있다. 코스피에선 전체(788개사)의 약 8%, 코스닥(1530개사)에선 7%의 기업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여정에서 반드시 치러야할 성장통으로 여겨야 한다. 증시의 건전성이 높아져야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자본이 늘어나 한국 기업의 미래 성장성도 높아지는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다만 당장의 매출은 낮으나 성장 잠재력이 높은 IT·바이오 기업이 불이익을 받는 부작용이 없도록 세심한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

한국증시 밸류업을 위해선 제도개편과 기업 자체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정부의 밸류업 정책 시행 1년이 지났으나 시총 상위 500대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돕지 않는 자에게 투자자들의 호응은 기대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