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이름은 루이스 마리아 우리베(Luis Maria Uribe·68세).
한국과의 인연은 숙명적이다. 유 신부가 태어나기 9년 전인 1937년 4월, 그의 고향에는 대학살이 벌어졌다. 고향 인구 7000명 중 3000명이 나치의 포격으로 희생됐다. 도망가는 주민들을 향해 총탄 세례를 퍼부은 나치의 잔혹상을 만천하에 알린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가 바로 그 게르니카다.
어렸을 때 라디오를 자주 들었는데 코리아라는 나라가 동족상잔으로 온통 초토화됐다는 소식에 그저 돕고 싶어 선교사가 된 뒤 자원했다고 한다. 구도와 봉사에 매진하느라 정작 자신의 부모 임종은 지키지 못한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산다.
“신부님은 성심원 그 자체입니다. 늦은 밤 홀로 기도하는 모습과 한센인 어르신들과는 형제자매로 그리고 어린 장애우들과는 친구처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 정말 모두가 늘 감동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작은자로서 만인의 형제로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훌륭한 선배 수도자를 모시는 저로선 큰 영광입니다.” 성심원 부원장으로 유 신부와 7년째 손발을 맞추고 있는 엄삼용(알로이시오·사진) 수사의 말이다.
그의 심야 기도는 너무 강한 빛을 발산해 제대로 바라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늘 기도하고 하느님 앞에 자기를 끊임없이 내보이면서 스스로를 낮추는 경지가 높은 구도자만이 낼 수 있는 신비의 힘이라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유 신부는 김대중 대통령 표창(1998.9), 아산사 회복지상(2002.12), 이태석 봉사상(2014.1) 등 다수 포상 경력이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한 탓에 우리말이 다소 어눌해 미사강론을 힘들어하고 또 장시간 회의를 달가워하지 않는 유 신부라지만, 인터뷰 한마디 한마디에 진정성이 샘솟고 살아 숨 쉬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이런 점을 감안한 성심원 측 양해로 인터뷰 내용을 가다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