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아침 9시, 한국식당에서 김 선생님을 만난다. 오늘 오후에 뭄바이로 가는 버스를 예약해 놓아서 시간은 충분하다. 전망 좋은 식당에서 좋아하는 라시도 한 잔 마시며 아침 식사를 한다.
이 식당으로 바로 옆으로 아침부터 염소들이 산책 중이다. 함피바자르의 중심가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이라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까만 머리카락을 예쁘게 땋고 있던 여자 아이들이 말을 걸고 지나가는 인도 남자가 “코리안 굿”이라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도 한다.
함피바자르를 벗어나 큰길로 나온다. 늘 보던 과일 노점상 아주머니를 지나쳐 손님을 기다리는 릭샤왈라에게 다가간다. 인원이 셋이니 여러 사원을 돌아다니려면 릭샤를 대절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김 선생님이 나서서 흥정을 한다. 500루피에 사원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흥정을 끝내고 릭샤에 오른다. 여행지에서 만나면 비용은 나누어 내는 것이 여행자의 원칙인데 이 비용을 김 선생님이 모두 내겠다고 한다. 사원은 가지 않고 경치나 즐기다가 떠나려고 했던 함피의 마지막 날, 우연히 만난 김 선생님 덕분에 반강제(?) 무료 사원투어를 하게 된다.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고맙기도 하다.
오토릭샤는 바자르에서 거리가 꽤 되는 사원 근처로 달려간다. 릭샤왈라는 우리가 사원을 방문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관광객이 많은 편인지 사원 밖 노점에서는 한창 음료수를 진열 중이다. 함피의 사원군들은 유명해서 단체로 온 학생들이나 인도인 관광객이 많다.
여기저기 왕궁과 사원을 들른다. 하도 여기 저기 다녀서 어디가 어딘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체 어떤 힘이 쪼개 놓은 바위인지 날카롭게 찢어진 바위면이 시선을 끌기도 한다. 신전이나 왕궁 말고 자연이 빚어놓은 볼거리도 널려있다.
남아있는 궁터만 보아도 번성했던 왕국이 이제는 폐허가 되어 있다. 이런 역사의 현장을 접하며 삶의 유한함, 권력의 덧없음을 한탄하다가도 돌아서면 금방 제 삶으로 돌아가 휙 잊어버리는 게 다반사다. 역사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알면서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왕궁 돌기둥에는 역시나 섬세한 석공예 부조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감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야외 고고학 박물관의 석공예 유적들은 투박한 모습이다. 왕궁의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우스꽝스런 모습도 재미있다.
많은 왕국과 신전들을 들렀지만 그 중에서 로터스마할(lotus Mahal)은 기억에 남는다. 왕비들을 위한 휴식공간이었다는 이 건축물의 용도와 인도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결합된 건축양식 때문이다. 1층은 이슬람 양식으로 지었고 2층은 힌두사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에 앉으면 사원을 방문한 인도 사람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들도 다른 지역에서 이곳으로 여행 온 인도인들이다. 예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자꾸 앞에 와서 쳐다보기에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액정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재잘 거리는 소리가 떠나질 않다가 뒤늦게 따라온 선생님의 한 마디에 진정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동행과 내가 여자라서 그렇게 인도남자들이 말을 시키고 사진을 찍나 싶었는데 김 선생님을 보니 그것도 아니다. 인도남자들은 외국인 남자들에게는 “마이 프렌드”를 연발하며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고 대화 나누는 것을 즐긴다.
이 더운 함피의 유적 중에 한가운데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다. 근처에 있던 인도인이게 들은 얘기로는 우기에 물을 저장하는 곳이라는 데 건기의 이 더운 날에도 물이 고여 있는 게 신기하다. 사원 한 군데를 둘러보고 나오면 밖에서 기다리던 락샤왈라가 다른 사원으로 데려다 준다.
빗딸라 사원(Vitthala temple)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오늘 본 유적지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사원으로 가기 위해 골프장 카트처럼 생긴 작은 코끼리 열차 비슷한 차를 타야하는데 특이하게도 이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젊은 여자들이다. 인도에서 젊은 여자가 일하는 걸 많이 못 봐서 새롭다. 유명한 사원인 만큼 입장료도 비싸고 기다리는 줄도 길다. 기다리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그늘도 설치해 놓았다. 역시 세계문화유산은 관리하는 차원이 다르다. 사원 안의 돌로 만든 전차는 차축과 바퀴까지 그대로 재현한 것이어서 굴러갈 수 있을 만큼 정교한 석공예라고 한다.
사원투어가 끝나고 함피바자르로 돌아와서 오토릭샤에서 내리니 벌써 3시다. 배경지식도 없이 일정에도 없던 사원투어였지만 함피에서 떠나는 날이 그 때문에 의미가 생긴다. 함피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하고 떠나게 되니 말이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배낭을 가지러 게스트하우스로 간다. 김선생님은 이제부터 딱히 할 일도 없다하시며 숙소까지 배웅을 해준다. 배낭을 찾아 메고 작별인사를 나눈다. 한국에서라면 길지 않은 이틀간의 만남이지만 여행지에서의 의미는 다르다.
여기오던 첫 날 호스펫 역에서 만난 릭샤왈라가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주머니의 친척이라 다시 호스펫으로 가기 위해 아주머니께 부탁해 그 릭샤를 불러두었다. 젊은 릭샤왈라의 얼굴에서 함피에 오던 날의 친절과 수다는 사라져 있다. 릭샤요금를 묻자 한참을 조용히 가던 그가 입을 연다.
“As you like…”
자기한테 사원투어를 안 해서 삐친 것 같은 뉘앙스로 하는 말이다. 잠시 생각하다가 함피 들어올 때 냈던 170루피를 준다. 적지 않은 돈인데 고맙다는 말도 없이 인사를 하고 떠나는 릭샤의 붕붕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남는다. 친절하기만 한 인도사람들의 얼굴이 바뀌는 건 이런 순간이다. 그렇게 함피는 멀어진다.
버스회사 사무실에서 뭄바이로 가는 벤츠버스를 기다린다. 오늘도 야간버스다. 기다리는 동안 바구니에 물건을 팔던 꼬마 녀석들이 옆에 와서 대놓고 쳐다본다. 말도 통하지 않고 딱히 할 것도 없어서 사진을 보여준다. 터치 화면이 신기한 건지 사진이 신기한 건지 이 꼬마들은 내 곁을 떠날 줄 모른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을 때워보지만 기다려도 버스는 예정도니 시각에 도착하지 않는다. 여기가 버스회사 사무실인데 직원도 버스가 언제 올 건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버스가 온다는 것을 알기에 무작정 기다린다. 여기는 바로 인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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