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서상범 기자]한국 자동차 시장이 무덤으로 불리는 차종들이 있죠. 해외에서는 잘 팔리지만 우리나라만 들어오면 맥을 못추는 모델들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해치백과 왜건입니다. 둘 다 해외에서는 실용성의 대명사로 군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딱히 인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입차들이 엔트리 모델로 해치백을 대거 도입하며 장벽이 낮아진 수입차를 구매하고자는 젊은 층 사이에서 해치백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기아차 파크타운
대표적인 수입 해치백인 폴크스바겐의 골프는 지난해 무려 7238대를 판매하며 준중형 시장에서 세단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보다 24% 증가하는 등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죠. 국산 해치백의 자존심 i30도 2007년 출시 이래 젊은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는 골프보다 낮은 판매량으로 자존심을 살짝 구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해치백이 젊은 층을 공략하며 인기 차종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왜건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왜건(wagon)이라는 차종은 쉽게 말해 세단의 지붕이 후면부까지 평평하게 뻗어있는 차를 말합니다. 즉 2열까지는 세단과 큰 차이점이 없지만, 트렁크 쪽의 공간을 늘려 화물칸의 기능을 강화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길이가 긴 물건의 수납도 용이한 장점을 지녀 해치백보다 한 수 위의 공간활용성을 자랑하죠.
미국 및 유럽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특히 미국에서는 픽업 트럭과 함께 다용도 차량으로 가정에서 선호하는 모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실용적인 차종이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 것일까요? 자동차 업계의 관계자들은 대부분 세단 모델을 부진의 원흉으로 돌렸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세단모델을 베이스로 길이를 늘리다보니 낯선 디자인은 물론, ‘짐차’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죠. 특히 80.90년대는 물론 아직까지도 자동차하면 ‘부의 과시’의 척도로 삼는 문화가 있다보니 점잖은 세단 승용차를 소구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실제 국산 왜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아반떼 투어링, 누비라 스패건의 경우, 각각 세단형인 아반떼와 누비라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참혹한 실패를 거두고 맙니다.
이후 출시된 기아차 파크타운도 세단인 크레도스를 모델로 만들어졌지만 도로에서 만나면 기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로 세단보다 비싸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현대차 i40을 예로 들어 세단형인 살룬은 2495만원~3125만원에 판매되고 있지만 왜건모델은 이보다 100만원이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죠. 현대차 측은 세단형에 비해 추가된 차체나 기능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물론 100만원이라는 가격이 넓은 공간이라는 실용성을 상쇄할 수 있겠지만, 당장 소비자들에게는 어필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죠.
여기까지 알아보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자동차라는 것은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비재인데요. 최근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레저열풍과 이에 더해 마트문화가 점차 일상적인 것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왜건의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요. 특히 ‘이케아’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직접 가구를 사서 집으로 가져가 조립하는 문화가 더욱 발전하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북미나 유럽쪽에서 왜건이 사랑받는 이유도 창고형 마트나 이케아와 같은 대형 가구점의 쇼핑이 일상적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물음에 대해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바로 택배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발달한 우리나라의 택배문화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한 관계자는 “마트에서 대량의 물건을 구매하더라도 자신의 차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배달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이케아는 외국에서는 배달을 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고, 해주더라도 조립은 구매자가 직접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우리나라는 배달부터 조립까지 원스톱을 진행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레저 열풍의 수요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들이 잠식하고 있다는 것도 있죠.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왜건이 사랑받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서 더 많은 차종들이 한국의 도로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합니다. 해치백이 그랬듯이 왜건도 언젠가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날을 꿈꿔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