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를 비로소 끝냈다. 한해 두해 수명을 다해가는 아파트인지라, 시린 삭풍을 막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됐다. 문풍지를 덕지덕지 붙이지 말라는 아내의 타박을 뒤로하고, 나름 솜씨를 보였다. 유리창에 어느덧 뿌연 김이 서린다. 올 겨울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리.

그렇게 안온한 느낌이 들 즈음 박주영과 구자철에게서 골 소식이 들려왔다. 후반기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좋은 징조였다. 지난 여름의 올림픽 감흥이 되살아났다. 한국인에게 ‘긍지’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선사하지 않았는가. 박주영은 궂은 일을 많이 겪어 측은지심이 들고, 구자철의 고갈된 체력을 지켜보며 꽤나 노심초사했었다. 그 이후 자주 그들에게 눈길이 가게 된다.

박주영은 아스널에서 한 시즌 동안 총 6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벵거 감독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골잡이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더 나가 병역회피 의혹도 받았다.

다행히 홍명보 감독의 두터운 시선이 있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기대와 달리 초반에는 만족할만한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정신은 살아 있는데 내내 몸이 무거웠다. 절절한 기다림의 마침표가 필요했다. 그 간절함은 마지막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나왔다. 전반 37분 4명의 수비수를 얇게 벗겨내고 오른발 슛으로 선제골을 터트리는 그림 같은 골 장면. 그것으로 깊게 둘러싼 어두운 장막과 굽은 시선을 한꺼번에 날려 보낼 수 있었다.

구자철(축구선수/FC 아우크스부르크/MF),박주영(축구선수/아스날FC/FW)
구자철(축구선수/FC 아우크스부르크/MF),박주영(축구선수/아스날FC/FW)

스페인의 셀타 비고로 임대 후 2호 골이 57일 만에 나왔다. 적잖게 늦은 감이 있다. 아스널의 악몽을 다시 떠오르지 않기 위해 팀을 강등권에서 구해내야 한다. 6년 만에 프리메라리가로 복귀한 셀타 비고의 운명이며 그의 운명이기도 하다. 영리한 플레이를 넘어 저돌적인 공격과 새로운 루트를 창조하는 모습이 요구된다. 다시 돌아갈 자리는 없다. 배수진을 치고 투우사처럼 정곡을 찌르는 해결사의 모습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구자철은 악성 빈혈로 대학 진학을 포기할 정도로 체력에 문제가 있었다. 각고의 노력과 천신만고 끝에 제주 유나이티드를 거쳐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팀 볼프스부르크에 입단할 수 있었다. 선수층이 두터워 출전기회가 없자 강등권에 시달리는 아우구스부르크로 이적해 마침내 팀의 수호신이 되었다. 그의 진가는 올림픽에서 확인됐다. 섬기는 리더, 희생하는 리더, 가치를 공유하는 리더로서 매 경기 14㎞ 이상을 달리며 공수조화를 이뤄냈다. 5경기에서 3번이나 골대를 맞추는 지독한 불운은 일본전이 끝이었다. 후반 11분 오른발 발리슛이 오차 없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마지막 골을 완성시켰다. 더 이상 부상없이 시즌을 마치고 볼프스부르크로 원대복귀하기를 희망한다. 큰물에서 놀아야 식견이 높아지는 법이다. 등에 진 짐은 무겁고 길은 멀지만 두 사람을 응원하는 우리가 있으니 혹한(酷寒)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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