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수능 치르는 서울 일성여고 3학년 조일행 씨 -육남매 장녀로 태어나 육남매 외아들과 결혼…가족 위해 살아왔지만 -“대학 진학해 방황 청소년 이끄는 멘토 되고 싶어”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늦깎이 수험생 조일행(52ㆍ여ㆍ사진) 씨는 요즘 손에서 EBS 수능 교재를 놓지 않는다. 교재 귀퉁이는 이미 까맣게 손 때가 묻었다. 수업시간에 받은 수능 기출 문제지에는 선생님의 설명이 빼곡히 적혀있다. 몇번을 풀어보고 외우느라 문제지는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오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수능이 며칠 안남았다’고 하시는데, 너무 떨리더라고요. 어휴…막 겁도 나고. 선생님 권유로 원서를 쓰긴 했는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 잠도 잘 못자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2반 교실에서 만난 조 씨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시험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고3 수험생 모습 그대로였다. 일성여고는 중ㆍ장년 여성을 위한 평생교육기관이다.

조 씨에게 이번 수능은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2009년 4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중학교에 입학한 후 밤낮 없이 공부 해온 지난 4년의 결실을 맺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성적의 높고 낮음은 조 씨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수험생으로 수능이라는 커다란 관문에 도전하는 그 자체가 조 씨에겐 벅찬 기쁨이고 기분좋은 설렘이다.

조 씨는 충남 예산의 한 농촌마을에서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키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조 씨의 학창시절도 일찌감치 막을 내렸다.

14살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고 17살에는 홀로 상경해 인천 공단에서 녹음테이프 제조 업체에서 일을 했다. 네명의 동생 중 두명을 서울로 불러 공부를 시켰다. 동생들 등록금을 위해 하루 12시간 야간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또래들이 너무도 부러웠”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24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6남매 중 외아들이었다. 참 얄궃은 운명이었다. 다섯명의 시누이와 시어머니를 모셨고 또 두 딸을 키웠다. 며느리로, 두 딸의 엄마로 사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마음 속 한 가운데에는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 늘 크게 자리했다.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서 서울 수서동에 있는 주부학교의 모습을 보고 인천에서 무작정 그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저녁 늦은 시간이라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발길을 돌렸다. 다시 찾아가진 못했다.

4년 전 인천의 한 주부학교에 입학해 중학교 공부를 시작했다.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배움의 열망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건 “공부 안하면 뭐할 거냐. 열심히 해봐라”는 남편의 한 마디였다. 시어머니도 평생 고생한 며느리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공부를 시작한 후 왠지 모르게 세상이 밝아졌다. 영어로 쓰인 간판이나 광고지를 봐도 술술 읽히고 의미도 이해가 되니 참 즐겁다. 예전에는 영어를 읽지 못하는 것을 누구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못 배운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거였는데..그 땐 못배운 내 자신만 탓했었어요. ‘매 순간이 꽃봉오리’라는 시처럼 매 순간이 소중한데 괜한 생각 때문에 지난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조 씨는 수시 만학도 전형을 통해 부천대학교 부동산금융정보과에 이미 합격했다. 수시합격자는 정시 지원을 할 수 없지만 또 다른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수능 시험을 치를 생각이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 전공 공부와 더불어 사회복지나 청소년지도학문도 복수 전공으로 공부해볼 생각이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바로 잡고 인생의 멘토 역할을 해주는 것이 그의 새로운 꿈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지금 하는 공부가 또 언젠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전 이제 절반을 조금 지났을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