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국정원 대화록 접근놓고 보안업무규정 위반 논란 가능성

대통령기록물관리 법 해석도 문제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이 좀처럼 잦아들고 있지 않는 가운데 오히려 ‘법의 미로’로 빠져들고 있다.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때마다 ‘위법 시비’가 불거지며 사안이 다시 꼬이기 때문이다.

25일 국회 운영위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2010년에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봤다”고 답변했다. 대통령기록관으로 넘어간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니라 국가정보원에 보관하고 있던 자료라고도 했다. 이로써 당시 남북회담 대화록이 국정원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런데 천 수석이 일급비밀에 접근할 수 있느냐가 논란이다. 민주당은 대통령령인 보안 업무 규정을 들어 대통령 등 장관급 이상인 일급비밀 인가권자에 청와대 수석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 규정에는 비밀 인가권자는 비밀에 접근할 직원에 대해 해당 등급의 비밀 취급을 인가한다는 내용도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장이 참모들이 일급비밀에 접근하도록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천 수석은 물론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했던 정문헌 의원도 인가권자의 허락만 있었으면 일급비밀에 접근할 수 있었던 셈이다.

천 수석이 국정원의 대화록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또 문제가 되는 게 있다. 국정원에 보관 중인 남북 정상 대화록은 법적으로 엄격하게 보호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대통령지정기록물과 상당히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상세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특별법으로 국회 재적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대통령지정기록물이 국회 통과 절차가 필요없는 대통령령으로도 공개나 열람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특별법 우선 원칙에 따르자면 국정원에 보관하는 일급비밀이라도 상급 법인 대통령기록물 관련법으로 보호되는 기록물이라면 보안 업무 규정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아울러 대통령지정기록물과 상당 부분 겹치는 자료가 국정원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다. 이 자료도 대통령기록관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냐, 아니냐에 따른 법 해석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의 보좌기관ㆍ자문기관 및 경호 업무 수행기관은 물론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기록 중 대통령 직무 수행과 관련된 기록물이나 물품이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며, 정상회담은 대통령만의 고유 직무다.

한편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 관련 법 개정 여부도 변수다. 법 개정에 성공해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내용이 공개된다면 대화록 기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또 논쟁이 불가피하다. 이때는 정치적 논란은 물론 사자(死者) 명예훼손 등의 소송전이 벌어질 수 있다.

<홍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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