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4회> 사랑을 위한 의식 22
지금 스피드 쇼크가 벌어지고 있는 평양골프장 앞거리는 마치 축제가 벌어진 선진국의 여느 거리와도 다를 바 없었다. 원래 평양이란 곳은 회색빛으로만 드리워진 도시여서 어딜 가든 깊이 잠든 코끼리 등판을 바라보는 느낌뿐이었다. 그런데….
유독 골프대회와 랠리 카 스피드 쇼크가 벌어지고 있는 이곳, 평양골프장 앞거리만은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는 말이다.
타이어 마찰로 인해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는 인근 태성호의 수면 위에 떠오르는 물안개처럼 신비로운 느낌마저 전해주었고, 고무가 타는 매캐한 냄새도 축제의 서막을 여는 향냄새처럼 두 사람의 품으로 안겨오고 있었다.
연도에 길게 늘어선 채 랠리 카가 지나칠 때마다 환호하는 군중 틈에서 유호성은 예원희와의 만남을 신비롭게 포장하는 중이었다. 세상에 동토의 땅,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북한 땅에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었을까.
“저 자동차 쇼가 정식 경기에 앞선 시범이라고 하셨나요?”
“그렇지요. 들러리가 먼저 나와서 북치고 장구 치고 하는 거예요.”
“아, 알겠다. 서커스가 시작되기 전에 광대 몇 명이 먼저 동네마당을 돌며 날라리를 불어대는 것과 같다는 말이지요?”
“그렇지요. 거 참 비유 한번 멋지네요.”
“그럼…진짜 서커스가 시작되면 왕자님께서 직접 몰고 달리는 속도 자동차를 볼 수 있는 거지요?”
“아마…그럴걸요?”
“무슨 대답이 그렇게 흐릿해요? 아마?”
“나는 아마추어가 아니니까…확실히 경기에 나간다는 말입니다.”
“아마추어가 무슨 말이에요?”
“그건…아직 운전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란 뜻이고요.”
“그래요, 왕자님께서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는 걸 저도 알아요. 어쨌든 날라리나 불어대는 저런 쇼가 끝나고 실제 경기가 벌어지면 왕자님이 확실히 출전하신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니까요.”
“어머, 멋있어요!”
이것들…도대체 뭐하는 짓일까? 어느새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그들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손바닥을 마주치는 중이었다.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유호성의 마음은 이미 랠리선수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그는 자기가 거짓말을 지껄이고 있다는 사실도 가늠할 수 없었다.
“자동차 속도경기가 벌어지면…저는 저 위에서 왕자님이 몰고 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감격에 젖어있을 거예요.”
예원희는 팔을 길게 뻗어 손가락 끝으로 양각도 호텔 꼭대기 층에 자리 잡은 스위트룸을 가리키며 말했다. 20여층쯤 될까. 평양골프장 뒤쪽 언덕 능선을 타고 번듯하게 솟아있는 양각도 호텔은 그 위용이 늠름했다.
“하긴…그 위에서 내려다보면 경기모습이 훤히 보이겠군요. 그런데 저 멋진 건물이 뭐하는 곳이지요?”
“호텔이지요.”
호텔? 이게 웬 떡이냐…유호성의 몸에서 드디어 환희의 전율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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