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박병국 기자] 지난 17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연탄마을’로 알려진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폐가처럼 흩어진 집들에서는 저녁이 되자 삶을 밝히는 불빛이 하나 둘씩 피어올랐다. 한나절 가을 빛으로 등산객들을 받아줬던 104번지 옆 불암산은 이 마을에서 새어 나오는 삶의 불빛에 자리를 내주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아직도 연탄을 쓰는 곳이 있을까’ 의심될만 하지만 ‘104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사실 서울에서 가장 많이 연탄을 소비하는 곳이다. 주민들은 저소득층으로 연탄마저도 정부 보조를 받는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거주자들이 연료비를 보조받고 있기 곳이기도 하다. 500여 가구 중 294가구가 연탄쿠폰을 받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70세를 훌쩍 넘긴 노인들로, 기초생활수급자인 동시에 장애인들이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연탄에 의지해 몸을 녹이고, 세숫물을 데우고, 음식을 해먹는다.

이선례(가명ㆍ40ㆍ여) 씨는 지난 18일 올 해 처음으로 연탄 아궁이에 불을 뗐다. 이날 새벽 아이들이 깊은 잠을 못이룬채 뒤척이는 것이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궁이에 연탄 3개를 채워 놓으면 하루가 거뜬하고, 마음도 든든해진다고 말하는 이 씨.

이 씨는 19년전인 1993년 이곳으로 시집왔다. 14년을 연탄을 때우며 살다 5년 전 쯤 분가했지만, 홀로 사시는 시아버지가 눈에 밟혀 다시 돌아왔다. 시집와 낳은 딸은 올 해 고3 수험생이 됐다.

1960년대 서울 전역에서 재개발 바람이 불때다. 용산, 동대문, 청량리의 원주민들은 돈 다발을 들고 다니는 자들에게 쫓겨났다. 쫓겨날 당시 철거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들이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 불암산 기슭, 104 마을이다.

동대문 철거민 출신인 최명순(가명ㆍ84) 할머니는 예전 이야기를 들려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 할머니는 “여기서 나 혼자 30년 넘게 살았어. 의탁할 곳이 없던 손자녀석이랑 같이 살 때도 있었는데 2003년에 그놈도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갔어. 자식들이 있는데 어디 손벌릴 수가 있나. 자식들이 있다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도 안돼. 죽는 날까지 뭐 어떻게든 버텨봐야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104마을의 전세가는 500만원. 월세라 해도 보증금 100만원에 10만원 정도다. 저소득층이나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은 노인들이 이곳에 많이 몰려 산다. 세(貰)가 싼 대신 계약서에 집수리나, 난방 등은 세입자 몫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런 이유로 연탄을 쓰는 가구가 많다고 동사무소 직원이 귀띔했다.

멀어져 가는 가을, 다가오는 겨울. 인근 동네 주민들은 104마을에서 연탄을 때 머리가 아프다고 민원을 넣기도 하지만, 이곳 104마을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하루 하루를 버티듯 살고 있다.

용산 철거민 출신으로 이 마을에서 45년을 살아왔다는 김 모(77) 할아버지는 3형제를 키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자식들을 대학에서 강의하는 애니메이션 박사로, 국제영화제 평가위원장 등으로 길러냈다.

김 할아버지의 며느리 이선례 씨는 “수능을 앞둔 고 3 딸아이 때문에 요즘 잠도 못자요. 애들이 대학가서 졸업할 때 쯤이면 연탄 때는 이 집에서는 벗어나야할 텐데”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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