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서 정황증거 인정
배심원들 만장일치 ‘유죄’ 선택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정황상 살인범이 분명하지만, 시체를 찾을 수 없어 유죄판결을 피해갔던 범인에게 5년만에 중형이 선고됐다.
끝까지 시신은 찾지 못했으나, 주변 핵심증언과 정황증거, 그리고 국민참여재판의 만장일치로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최동렬 부장판사)는 19일 투자금을 갚으라고 재촉하는 지인을 땅에 파묻어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된 A(41)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사건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4월, 일용직 중장비 기사인 B씨(당시 32세)가 사라졌다. 당시 B씨는 A씨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B씨가 실종된지 3년 반이 흐른 지난해 말 A씨의 과거 동거녀가 경찰로 전화를 걸어 왔다. A씨와 함께 2008년 5월 충남 아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A씨가 “내가 B씨를 굴착기로 생매장해 죽였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여행 직후 B씨가 가져온 A씨의 휴대전화와 가방 양말 등 소지품을 경기 용인시의 한 수녀원 옆 다리 밑에서 함께 태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B씨가 실종된 사실을 확인하고 A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이 들춰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A씨는 일용직 중장비 기사로 일하면서 알게 된 B(36)씨에게 동업을 권유해 2007∼2008년 2차례에 걸쳐 사업자금으로 약 129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B씨는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며 압박했고, A씨는 이에 격분해 B씨를 때려 정신을 잃게 한 뒤 구덩이에 밀어넣고 흙을 부어 질식해 숨지게 했다.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재판에서 12명의 배심원 앞에서 동거녀와 경찰의 진술, 관련자들의 통화 및 출입금 명세 등 모든 정황 증거를 제시했다. 특히 A씨가 2008년 5월 들어 갑자기 집과 자동차를 처분하고 여권 및 수표를 발행받는 등 아들과 중국으로 출국하려 한 증거도 나왔다.
그러나 시체가 없는 이상 이런 건 모두 정황증거였다. 지난 2008년 또다른 시신없는 살인사건 당시 대법원은 “피해자의 사망 사실이 증명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그 사망이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시신없는 살인사건’의 결론은 달랐다. 정황증거와 함께 배심원 9명 전원은 ‘유죄’를 선택이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졌다.
A씨가 “누명을 썼다”며 신청한 국민참여재판은 16일부터 18일 사흘간 진행됐고 마지막날, 피고인의 최후변론 후 평의에 들어간 배심원들은 이튿날 새벽까지 격론을 벌인 끝에 A씨의 범행을 확실시했다.
재판부는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고 매장 장소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핵심 증언의 신빙성이 강력한데다 가까운 사이인 피해자가 사라졌음에도 피고인이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등의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일부 증인의 믿기 어려운 진술을 배제해도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참여재판의 배심원 9명은 만장일치로 유죄 의견을 낸 배심원들이 양형 의견 가운데 양형기준에 근접한 다수의견에 따라서 형량을 정했다”고 전하며 ‘시신없는 살인사건’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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