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붉은 길, 푸르른 마음 (3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유호성은 저 스스로, 제 자신이 스타급 레이서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아무도 알아주질 않았으니 저 혼자 팔고, 제 손으로 뒤집어서, 제풀에 설사하는 고스톱 판의 ‘자뻑’과 다름없었다.

다시 말해서… 유호성은 재벌급 스타의 도도한 자세로 강유리를 찾아왔지만, 남들의 눈엔 월야침침 야삼경에 그녀를 추행이나 하는 치한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왜냐고? 그녀야말로 이미 인기반열에 오른 유명인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누구야?”

“쉿! 나… 나야! 조용히 해요.”

어깨를 가볍게 흔든다는 것이 그만, 그녀가 몸을 외로 돌려 눕는 통에 젖가슴을 더듬는 꼴이 되어버렸는데… 자초지종이야 어찌 되었건 당황한 쪽은 유호성이었다.

“누구…? 호성 씨?”

“그… 그렇다니까.”

“왜요? 내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녀는 잠꼬대를 하듯, 혹은 속삭이는 듯 이렇게 물었다. 지그시 눈 감은 모습 그대로였으므로 꿈결에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유호성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젖가슴에 닿아있는 손바닥의 감각으로 그녀의 심장이 팔딱 팔딱 뛴다는 것도 아울러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비명이라도 질렀다면 더 이상 진도 나갈 일은 없었을 텐데… 그녀의 반응이 달콤했으므로 어차피 젖가슴 위에 놓인 손을 염치도 없이 조물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게 말예요. 어찌나 보고 싶던지.”

야밤의 비행기 1등석은 고요하기만 했다. 마치 한 타 차이로 승패를 가르는 골프경기에서 마지막 18홀 퍼팅을 하는 순간처럼 적막이 느껴지기도 했다. 강유리는 그 고요함을 타고 도둑고양이처럼 찾아 온 유호성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겉은 어엿한 남자였지만 속은 아직 제대로 여물지도 못한 사춘기 소년.

“앞으로 항상 같이 지낼 텐데요, 뭘.”

이런, 이런! 그녀의 젖가슴 위로 유호성의 악력이 점점 거세게 느껴져 왔다. 유호성이 본격적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희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만지면… 만질수록 그녀의 젖가슴도 예사롭지 않게 부풀어 올랐다. 이런저런 경우를 닥쳐가며 여러 차례 남자의 손길을 받아 보기도 했지만 웬걸, 그의 손가락이 꼬물거릴 때마다 몸이 후끈거리며 귀밑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옆에 같이 앉을까?”

“사람들 눈이 많은데 어떡해요.”

1등석은 좌석이 침대와 흡사했으므로 ‘같이 앉자’는 말은 곧 ‘같이 눕자’는 소리와도 같았다. 강유리도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녀의 한쪽 손은 어느새 유호성의 한쪽 손을 포개어 쥐고 있었다. 할딱할딱 부풀어 오르는 젖가슴 위에 솥뚜껑 같은 유호성의 손이, 그 손등 위에 표백한 고사리와도 같은 그녀의 하얀 손이 지그시 겹쳐진 모습이었다.

그런 와중에 두 사람은 좌석 앞에 장착된 모니터를 자연스레 응시하는 중이었다. 누구라도, 한글을 해독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숨이 막혀올 만큼 뜨거운 대화가 모니터 하단에 자막으로 흐르고 있었다.

“영화 ‘엠마뉴엘 부인’에서도… 저기에서 해요.”

그랬다. 강유리도 엠마뉴엘 부인의 여주인공을 기억하고 있었다. 관능으로 뭉친 그 여자의 몸짓은 유연했다. 그 여주인공이 숨 막히는 정사를 벌인 곳이 바로 비행기 1등석에 딸린 기내화장실 아니었던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