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옮긴 박범신 동명소설 ‘은교’…시인-제자-소녀의 미려한 감정변화 그려낸 ‘관능의 에로티시즘’

노인이 벌거벗은 자신의 육신을 내려다본다. 슬프다. 탄력을 잃고 늘어진 살과 시간이 내려앉은 검버섯뿐이다. 늙은 육체는 슬프다.

노시인이 살포시 잠든 소녀를 바라본다. 관능적이다. 새하얀 목덜미의 솜털이 햇빛에 반짝이고, 봉긋한 가슴이 숨결과 함께 오르내린다. 반바지 아래로 뻗어내린 허벅지와 종아리가 벅차게 하얗고 아름답다. 불현듯 노시인의 마음속에 파문이 인다. 시심(詩心)인가 음심(淫心)인가. 정사의 희열에 몸을 떠는 젊은 남녀처럼 시심과 음심이 뱀처럼 엉켜든다. 시도, 젊은 여체도 관능적이다.

박범신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옮긴 ‘은교’(감독 정지우)의 초반 두 장면은 노시인(박해일 분)과 젊은 제자(김무열 분), 열일곱살 소녀(김고은 분)가 이루는 희비극을 압축하고 요약한다. 이후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은 두 신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

태초 이래 신분, 가문, 죽음, 망각, 오해, 편견, 빈부, 불륜, 배신, 음모가 있기에 연인은 희로애락의 무대에서 춤추는 광대가 되고, 사랑은 인류가 상연하는 최고의 드라마가 돼 왔다. 하지만 사랑의 희비극을 불러내는 가장 근원적인 ‘안타고니스트(대적자)’는 무엇인가. ‘은교’는 답한다. 시간이다. 시간은 사랑을 증오와 집착으로 변모시키고, 때로 차갑고 의미 없는 습관으로 퇴화시키며 돌이킬 수 없는 추물로 만들어 버린다. 그 뿐이랴. 시간은 육체를 늙게 하지만, 그 속에 유폐된 젊은 욕망은 세월을 모른다. 거장의 노시인 이적요는 “당신의 젊음이 당신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듯, 내 늙음 또한 내 잘못으로 인한 게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노시인 이적요가 살고 수제자 서지우가 온갖 허드렛일로 수발을 드는 서울 근교의 고즈넉하고 풍경 좋은 집. 그곳에 불현듯 한 소녀가 침입하면서 시인의 이름처럼 고요하던 일상이 깨진다. 여교생 은교. 외출하고 돌아온 사제는 뜰의 흔들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던 은교를 발견한다. 낯선 소녀는 왜, 어디로부터 왔을까. 노인의 질문에 은교가 심드렁하게 답한다. “이런 의자에 앉아보고 싶었어요.”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소녀는 청소며 빨래며 이런 저런 심부름을 하는 ‘알바생’으로 노시인의 집을 드나든다. 시인의 집을 지배했던 정적과 규칙이 하나둘씩 무너지고, 그동안의 일상을 감당했던 젊은 제자 서지우의 당혹감은 커져만 간다. 근작 대중 소설 ‘심장’으로 수십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오른 패기만만한 작가. 그러나 스승으로부터는 “별이 다 똑같은 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십년이 걸린 공대출신”이라고 종종 경멸받는 문학인 서지우. 노시인은 노시인대로 소녀를 보며 성적인 환상과 문학의 상상력을 새롭게 지펴가지만 젊은 제자의 눈빛은 갈수록 걷잡을 수 없는 의혹과 불만, 불안에 쌓여간다. 그러던 중 서지우는 70대 거장 문학가와 미성년 소녀의 섹스를 다룬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문단으로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세 남녀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이 기이한 삼각관계의 절정은 정사(情事)이며 대단원은 죽음이다. 물론 비밀의 봉인은 최후에 열린다. ‘해피엔드’ ‘모던 보이’의 정지우 감독은 관음증과 페티시즘을 자극하는 클로즈업 화면과 ‘헤어누드’를 불사한 사실적인 정사 장면으로 이전 한국영화에선 보기 드물었던 품격과 관능의 에로티시즘을 담아냈다. 70대 노인 분장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박해일, 그와 팽팽한 대척점을 만들어내는 김무열의 연기도 출중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 발굴된 신인 김고은이야말로 이 영화의 헤로인이라 할 만하다.

시인의 마지막 한 마디가 자아내는 여운이 길다.

‘잘가라, 은교야’.

25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