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바람 부는 길(35)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내일 새벽 비행기로 뉴욕의 보석상이 몰려있는 티파니를 향해 떠나기로 약속했으니, 오늘 밤 두 사람은 굳이 헤어질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인천공항 입구에 있는 별 일곱 개짜리 특급호텔에 함께 투숙했다. 나이는 많지만 명색이 처녀인 양은혜는 어차피 독수공방 하는 중이었고, 유민 회장 역시 불가피한 사정으로 독수공방 중이었으니 어쩌면 누가 누구의 손을 먼저 잡아끌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회장님이 이렇게 화끈한 성격인 줄은 몰랐어요.”
“나도 양은혜 씨가 이토록 담백한 아가씨인줄 몰랐소.”
엎어 치나 메치나 그 말이 그 말이다. 서로 간에 이토록 화끈하게 ‘몸친구’가 되어서 좋다는 뜻이었다. 하여간 두 사람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유민 회장은 양은혜를 800억 원짜리 자금줄로 여겼고, 양은혜는 유민 회장을 러시아 저질광산에 개발 붐을 일으켜 줄 투자자로만 여겼다.
“회장님, 평상시에 복용하시던 고혈압 약은 드셨나요?”
“밤 열 한 시만 되면 잊지 않고 복용합니다. 조금 전에 먹었어요. 왜요?”
“그야… 오늘 회장님 생애에서 가장 감격적인 밤을 연출할지도 모르니까요…”
호텔 어두운 복도 끝에서 중얼대는 양은혜의 말이 알쏭달쏭했다. 하지만 유민 회장은 이토록 진도가 빠른 것이 흐뭇하기만 했다. 역시 여자를 단번에 낚으려면 더블베팅이 최고였다. 어차피 사주어야만 할 다이아 반지라면 까짓 비행기 삯 좀 더 들여서라도 당장에 티파니로 끌고 가는 것이 최고의 모범답안이라는 데에 이의가 없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군요.”
유민 회장은 감격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속으로 다짐하는 중이었다. 800억 원… 5대륙 관통 랠리 자금으로 쓰일 그 거금을 융통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두 유어 베스트!
상열지사에 임하여 남자가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숟가락 들 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이를테면 탈진할 때까지 노력봉사 하는 것을 뜻한다. 손, 혀, 이빨 등을 총동원하여 물고 뜯고 꼬집고 비틀고 문지르면서 몸을 던져 봉사하기! 그렇게 노력하는 1시간 동안을 ‘예열단계’라고 일컫는다.
1시간은 3,600초. 파트너의 몸을 360구비로 나누어 1구비에 10초씩 봉사하는 것을 1겁이라고 한다. 1겁 예열단계를 넘어야 발동이 걸리고, 그렇게 1겁을 더 달려야 신열이 오르게 되니, 이쯤이면 남자는 반노(叛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반노란 상전을 거역한 종을 일컫는 말이다. 유민 회장은 적어도 3번 까무러칠 동안 상전에게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룻밤에 무려 세 번 까무러치기! 고개가 절레절레 내둘러졌지만 그는 장렬하게 호텔 방문을 열어 젖혔다.
“오! 멋져요, 회장님. 어쩜 이렇게 낭만적인 방이 있어요?”
“오호! 나도 이런 방은 처음이로군요. 아주 훌륭한 방이야.”
별 일곱 개짜리 특급호텔의 위용일까? 룸 한 가운데에 방습 목재로 만들어진 커다란 욕조가 들어서 있었으니 그녀가 놀랄 만도 했다. 욕조 안에는 이미 더운물이 가득 담겨 수증기를 뿜어내는 중이었고 그 뒤쪽에는 대형 텔레비전 화면이 켜져 있었다.
“핀란드식 사우나도 있어요, 회장님. 여기에서 가운으로 갈아입고 나갈게요. 잠시 동안 텔레비전 좀 보고 계실래요?”
“허허, 그럽시다. 마침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란 영화가 시작되는 군요. 미리 프런트에 부탁해 놓았거든요? 맞아, 저 여자가 오드리 헵번이지. 어쩜 저리도 예쁠까?”
풀장만이나 한 커다란 욕조 너머로 펼친 이불만이나 한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고, 그 화면 속에서 오드리 헵번이란 절세미인이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블랙드레스라고 했던가? 몸매를 따라 흐르는 간결한 민소매 드레스. 헵번의 우아하기 그지없는 몸매에 넋을 잃고 있던 차에 첨벙! 더운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양은혜… 그녀가 먼저 욕조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