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잔인한 봄날을 보내고 있는 안방에 찾아온 이동우의 희망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잠시나마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 5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는 방송인 이동우가 출연했다. 1993년 틴틴파이브로 데뷔, SBS의 간판개그맨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이동우는 2004년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으며 시력을 잃은 이후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긴 시간을 보낸 이동우는 다시 희망의 날들을 살고 있다.
지난달 1일 봄 햇살이 완연했던 당시 진행된 녹화에 참석한 이동우의 모습은 화사했다. 2010년 이미 실명판정을 받았지만 “아주 강한 빛이 쏟아지는 명암은 구별이 된다”며 “오늘 같은 날씨는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이동우는 MC들과 마주 앉아 그간의 이야기를 전했다.
진행성 난치병인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은 이후 빠른 속도로 악화됐던 이동우의 지난 삶은 쉽지 않았다. “당신은 머지 않아 실명합니다.” 혹시나 다른 판정을 받을까 실낱같은 기대를 안고 찾았던 수십 곳의 병원에서도 늘 같은 말만 들었다. 마치 사형선고 같은 ‘예고된 불행’은 절망과 암흑의 연속이었고, 중도장애를 안게 된 사람들이 겪는다는 패닉, 부정, 분노, 수용의 단계를 너무도 착실히 밟았다.
이동우에게 “부정과 분노의 시간은 특히 길었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 맨 정신으로는 견디기 어려워 눈을 뜨면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해야 잠이 들던 날도 있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기라도 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며 분노를 참지 못했던 긴 시간이었다.
이동우는 그 때를 떠올리며 “가족들이 나로 인해 힘들어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을 만큼 막무가내였다”며 “지금 생각하면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고 전한다. 수없이 자신과 가족을 할켰던 상처도 아물고, 비극으로만 바라보던 장애를 현실로 받아들인 상황이 됐기에 꺼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동우가 혼자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 상황에서 아내는 뇌종양 판정을 받게 됐다. 불행은 늘 예고없이, 그리고 한 번에 찾아왔다. “세상에서 증발해버리고 싶었다”던 절망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때에 기적처럼 아이가 찾아왔지만, 마냥 행복해할 수만은 없는 선물이었다. 이동우와 뇌종양을 앓던 아내에게 아이는 ‘사치’가 아닐까 생각됐다고 한다. 어느날 찾아온 장애를 받아들일 때와 마찬가지의 공포가 다시 한 번 아빠 이동우 앞에 그려졌다.
아내는 아이의 임신으로 미뤄뒀던 뇌종양 수술을 출산 이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의사는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 하루에 12시간 이상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하라고 권고했다. 살아난 아내를 바라보는 기쁨에 빠지는 것 역시 그 때의 이동우에겐 사치였다. 보이지 않는 날이 길어지는 자신과 힘든 고비를 간신히 넘긴 아내, 갓 태어난 아기.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새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아빠가 되자 이동우는 막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있는 것도 모른채 덜컥 깔고 앉기도 하고,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시야로 이유식을 먹이려 했지만 입이 아닌 눈에 숟가락을 가져가기 일쑤였다.
제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빠로서도 남편으로도 자격미달이 아닐까, 아내가 이혼을 말하면 당연히 보내줘야지 그렇게만 생각했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절망의 끝에서 이동우의 손을 잡아준 건 아내였다. 그는 “하루는 아내가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시력이 남아있을 때 세계의 모든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넣어오라고 했다”며 “아내는 ‘세상에서 보는 마지막 장면이 누워있는 내 모습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을 했다. 많이 울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흘린 희망의 눈물이었다”고 했다.
이동우의 삶은 그 때부터 달라졌다. 한 때는 모두의 사랑을 받던 인기스타였던 탓에, 시각장애를 가지게 됐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못했던 그는, 재활훈련을 받고 흰 지팡이를 사서 자신의 상태를 알렸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의 이동우에게 ‘예고된 불행’은 과거의 일로만 빼곡히 적혀있게 됐다. 지난해엔 데뷔 20주년을 맞아 슈퍼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철인3종경기, 재즈가수, 연극으로의 도전. 이동우의 곁을 함께 하는 매니저가 철인3종경기를 제안했을 때는 “안될 거라 생각했다”지만 “꼭 완주할 필요 있냐”는 매니저의 말에 이동우는 건장한 20대 청년도 힘든 도전을 40대 중반 무렵에 해냈다.
난치병 판정 이후 이미 10년이 지났지만, 이동우에겐 아직 희망과 바람이 하나 있다. “전세계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반드시 눈을 뜰 수 있을 거라 믿는다”는 그는 “만화 같은 소망일지도 모른다. 내게 5분만 주어진다면 딸 지우와 함께 있고 싶다. 사람들이 엄마를 닮아 눈이 예쁘다고 하는데 나도 보고 싶다”고 했다.
깊숙히 넣어둔 단 하나의 소망을 이야기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을 뒤늦게 꺼내보이면서 이동우는 내내 편안한 모습이었다.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지만, 천생 ‘딴따라’답게 유쾌한 입담, MC들을 향한 장난스런 농담도 던지자 ‘힐링캠프’의 한 시간은 이내 치유의 시간이 됐다.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이동우는 방송 말미 시청자들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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